[최규철칼럼]´병풍·신당 협주곡´

  • 입력 2002년 8월 28일 17시 48분


장대환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로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지러워하거나 이젠 신물난다고 고개 돌릴 일은 아니다.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사연이 배태된 것이어서 크게 놀랄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장씨에게는 따라다니는 도덕적 의혹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보다 시원적(始原的)인 것은 지금 정국을 틀어쥐고 있는 두 가지 흐름과 그 반작용 때문이다. 첫째는 머지않아 이름이 바뀔 새천년민주당의 마지막 작품 ‘병풍’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민주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당 창당 움직임이다. 두 사안은 별개 같지만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어지럼병에 걸린 것 같은 혼미한 정국은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결고리를 끼우기 위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결과다. 두 가지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집권세력의 정치적 이해를 마무리짓겠다고 나선 민주당이 모두 주연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먹칠효과´노리는 전술▼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을 물고늘어지는 민주당의 전의(戰意)는 상상을 절한다. 5년 전 대통령 선거전에서 꺼내들어 이 후보를 떨어뜨린 ‘병풍’을 재탕, 삼탕 몰고 가는 것을 보면 신들린 듯한 모습 같기도 하다. 왜 어느 날 불쑥 사기전과자가 주역으로 나섰는지, 녹취록은 도대체 몇 개이며 원본은 또 무엇인지, 국가기관이 수사한 녹취록이 개인 소장품이 되어 밖으로 나와 돌아다녀도 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를 쳐나가고 있는 것이 병역비리 의혹이다. 그런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도 속으로 한가지만은 알고 있다. 이 사건은 이미 구조적으로 드러났듯이 쉽게 흑백이 가려질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얼떨결에 털어놓은 ‘병풍수사 촉구 발언 요청’이나 수사검찰 간부의 공정성 논란 등이 그런 사정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쏟아내는 모습이다. 이 사안의 함정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일 계속되는 병역 공방에 이제 많은 국민은 식상해 있고 지겨워하고 있다. 5년이 지난 사건인데도 밝혀진 것은 없고 고함만 크니 그럴 만하다.

이 사건이 확전일로에 들어선 이유에는 한나라당의 대응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하기야 자당 대통령후보의 명줄에 비수를 겨누는 공격이니 강력대응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걸려들었다. 어쨌든 이 후보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변명이건 해명이건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수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싸움이 거칠어질수록 새로운 탈출구가 없는 한 한나라당은 수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정치인들은 민생은 돌보지 않고 매일 정쟁만 하고 있어도 되느냐는 국민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불신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선정국에서는 그 의미가 크게 부각될 수 있다. 정치지도자, 나아가 대통령 후보에 대한 실망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특히 지지하는 정파가 없는 부동층에서 쉽게 나타난다. 싸움이 오래 갈수록 이런 ‘먹칠효과’는 커지게 마련이다. 민주당, 아니 집권세력은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정권부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병풍으로 일단 가려 보겠다는 욕심도 갖고 있다. 최근 권력비리 이야기가 뚝 끊어졌으니 병풍의 효자노릇을 단단히 보는 셈이다. 그 맛에 취해서인지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 후보 부친까지 겨냥해 대선용 의혹 메뉴를 더욱 넓힐 심산이다. 그런데 병풍으로 권력비리를 가려 보겠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병역의혹과 정권비리는 전혀 별개다. 물귀신 전술로 민심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질´에 썩어든 토양▼

이제 눈여겨볼 대목은 집권세력이 정치불신이란 병풍효과를 어떻게 신당에 접목시키느냐는 것이다. 지금 신당 움직임이 여러 갈래지만 불원간 집권세력은 ‘새 인물’도 만들고 그를 중심으로 한 신당도 만들어 낼 것이다. 월드컵경기가 한창일 때 관중석에 걸렸던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란 플래카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 열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에게는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 정말 우연히 나온 것인가. 음모의 냄새는 없는가. 새 인물과 신당을 들먹이지만 ‘새 것’이 나오기에 이 정권의 정치토양은 너무 썩었다.

‘병풍 흔들기’재미가 쏠쏠하다고만 생각 말라. 병풍이 불건 말건 지지세력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 점, 집권세력도 잘 알 것이다. 오히려 내부 결속을 더욱 단단히 만든다. 이 정권은 저질의 정치작태가 난무한, 참으로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그 ‘후폭풍’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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