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대북뒷돈설 빨리 밝혀야

  • 입력 2002년 10월 2일 18시 25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대북 뒷거래설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국정감사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남북정상회담은 김 대통령의 노벨상 욕심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돈 욕심이 맞아떨어진 ‘짜고 친 고스톱’이다”, “노벨상을 위해 김정일을 한번 만나려고 거금을 퍼다 준 것은 이적행위이자 국기문란의 대죄이다” 등등의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우려되는 남북간 뒷거래설▼

재작년 4·13총선 투표일을 바로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계획이 갑자기 발표될 당시에도 그가 이 회담을 선거와 노벨상 수상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노벨상 문제가 4억달러라는 거액의 뒷돈 지불설과 얽혀 공론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누구든지 세계 평화를 위해 탁월한 업적을 이룩해 이 상을 타겠다는 것 자체는 하등 허물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김 대통령이 남북대화라는 본연의 목적 이외에 노벨 평화상도 노리고 뒷돈을 바쳤느냐의 여부이다.

노벨 평화상에는 옛날부터 끊임없이 구설이 뒤따르고 있다. 1901년의 제1회 수상자인 세계적십자운동의 아버지 앙리 뒤낭을 비롯해 1905년 수상자인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그리고 73년 수상자로 결정된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월맹의 레 둑 토 정치국원의 경우 업적 시비가 있었다.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는 재임시 오키나와 반환과 비핵 3원칙을 마련한 공로로 74년 이 상을 받았으나 일본의 기업들을 시켜 로비를 전개한 것이 나중에 드러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유력 광고회사와 홍보계약을 맺고 60개국에 있는 이 회사 지사들을 동원해 IOC가 노벨상을 타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려다가 93년 노르웨이 신문에 보도되어 창피를 당했다.

김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그의 노벨 평화상에 대한 집념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는 98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 현재 김홍걸 게이트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에게 그의 속내를 털어놓았었다. “(나는) 남북관계를 풀어 가지고, 그렇게 우리 국민이 숙원하는 노벨 평화상도 받을 거야. 그때도 자네가 역할을 해 줘.” 실제 최씨는 김 대통령의 수상을 위해 유럽 현지로 갔다고 주장했다.

김 대통령에 대한 노벨 평화상 수여 이유는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헌신하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였다. 당시로서는 막 시동이 걸린 남북관계를 그의 업적으로 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대해 노벨 평화상 심사위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명했다. 따라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자체보다는 김 위원장 면담을 위해 뒷거래를 했는가, 그리고 이 때문에 국가에 손실을 끼쳤느냐 여부이다. 이 문제는 현재의 남북대화와 관련된 모든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너무 서둔 남북정상회담▼

다만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김 위원장과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자신의 말 그대로 그가 지나치게 평양행을 서둔 사실이다. 그 결과 난데없이 김 위원장의 차에 동승하는 등 방문 일정과 회담 의제에 혼선이 일어났으며 문제의 통일조항도 김 위원장과의 즉흥식 담판의 결과였다. 김 위원장은 처음에는 6·15공동선언에 공식서명을 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우리측의 저자세로 남북기본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된 것은 최대의 손실이었다. 뒷돈을 내고도 이렇게 되었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만약 김 대통령이 당시 좀 더 의연한 대북자세를 취했더라면 현재 남북관계는 어떤 상태일까. 그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알찬 성과를 거두고 좀 늦더라도 더 많은 국민의 축복 속에서 노벨 평화상의 영광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북 뒷돈설은 조속히 밝혀져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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