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생산 분야 여성참여 적어▼
여성이 과거 경제질서 속에서 뒤떨어져 있었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경제질서 속에서도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장애물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이 회의의 중요한 화두였다.
인터넷 사용자로서 단순히 웹을 서핑하는 수준만 놓고 보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보 격차는 별로 없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즉 인터넷 공간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써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따지게 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인터넷을 통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자나 기획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크게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소비자로서 남녀간 정보 격차는 줄었지만 생산자로서의 격차는 심하게 벌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간 정보 격차에 대한 논란은 이제 양보다 질적인 측면으로 옮아가는 추세다.
이 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부의 후원으로 숙명여대 아태여성정보통신센터가 이 문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동안 정부, 민간, 학계에서 벌였던 ‘백만 주부 인터넷 교육’이나, 한 단계 진전된 ‘여성을 위한 e비즈니스 교육 프로그램’ ‘아태지역 여성을 위한 정보기술 교육’ 등의 실제 사례를 발표하고,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이후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소개했다.
인터넷 생산자로서의 남녀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정보통신 훈련을 받을 기회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는 게 이 발표의 최종 결론이었다. 이 발표를 계기로 APEC 국가들이 내년부터 여성 정보통신 훈련을 담당할 사람들을 우리나라로 보내 집중 훈련을 받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게 됐다.
이번 회의에는 여성 정책을 전담하거나 여성 관련 업무를 맡은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뉴질랜드는 노동부 장관이, 대만은 노동청장이, 홍콩은 건강복지보건부에서, 미국은 국무부에서, 러시아는 노동과 사회복지부에서 대표를 보냈다. 우리나라의 여성부와 같은 기관에서 대표가 참석한 나라는 호주, 멕시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이었다. 일본은 이 회의에 법무상을 포함한 대표단 8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한 명만 여성이고 다른 일곱 명은 남성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각 나라가 그동안 진행해온 여성 정책의 결과를 정리한 ‘성 주류화 발전 리포트’도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홍콩은 ‘디지털 21’이라는 전략을 마련해 올해 9000만달러를 들여서 정보통신 인프라구조를 개선하고 여성들의 컴퓨터 및 온라인 서비스 접근을 돕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호주의 경우 연방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95년의 14%에서 올해 27%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디지털시대 지위향상 디딤돌▼
캐나다의 경우 역사상 최초로 현 내각 구성원의 4분의 1이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물론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것이 정부 기관이나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이 얼마라는 식으로만 측정될 수 없지만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가는 중요하다.
이번 회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여성이 지위 향상을 꾀하려면 정치적 진출 이외에도 정보통신 분야에서 능력을 키워야 하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일깨워준 자리였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가 여성의 정보통신 훈련을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실적 면에서도 다른 나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APEC 지역의 여성 정보통신 훈련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mkan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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