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주량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만 20세 이상 성인 한 명이 평균 맥주(500㎖) 119병을 마셨고, 소주(360㎖) 79병과 위스키(500㎖) 1.4병을 곁들였다고 한다. 2000년보다 9%나 늘어난 소비량이다. 진료실에도 알코올로 인한 간 질환 환자가 꾸준히 느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음주 행태는 간에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다. 그 빈도는 물론이고,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될 때까지 마시는 폭음은 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우리가 마신 알코올은 대부분 위장과 소장에서 흡수된 뒤 간에서 분해 처리된다. 많은 양의 술을 계속 마셔대면 간은 과다한 알코올을 처리하느라 녹초가 되고, 마침내 간세포 자체가 타격을 입는다.
알코올 때문에 생기는 간 질환은 가장 흔하면서 비교적 가벼운 지방간과 중증인 간염, 그리고 간경변증이 있다. 이 중 알코올성 지방간은 술을 끊으면 정상간으로 회복될 수 있지만 간염이나 간경변증은 그렇지 못하다. 술을 끊더라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간염이 간경변증으로 진행하거나 간부전 등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10년 이상 과음해온 알코올 중독자들의 20∼30% 정도는 이미 간경변증 상태로 알려져 있다.
정상인의 간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 양은 160g 정도다. 소주로는 2홉들이 2병, 양주로는 350㎖, 맥주로는 4000㏄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실제로 간경변증을 일으킬 수 있는 알코올 양은 이보다 훨씬 적어서 남자의 경우 매일 40∼60g(소주 1홉, 양주 100㎖ 또는 맥주 1000㏄ 정도) 이상을 마시면 위험하다. 여자는 약 절반 정도의 알코올 양으로도 간경변증이 올 수 있다. 단기간에 폭음하는 것도 간에 타격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간혹 고급술을 마시면 간에 덜 해로울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간은 고급 양주와 소주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섭취된 알코올의 절대량이 문제일 뿐이다. 약을 먹는다든지 기름진 안주를 먹으면 간이 보호되리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기름기는 위장에서 알코올 흡수를 더디게 해 빨리 취하지 않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결국 알코올이 모두 흡수돼 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빈속에 술만 마시면 영양결핍으로 간 손상이 더욱 조장될 수 있으므로 식사는 거르지 말아야 한다. 안주로 배가 불러지면 술을 덜 마시게 되는 이점도 기대해볼 수 있다. 과음한 다음날 해장술은 금물이다. 간밤에 녹초가 된 간에 다시 한번 타격을 가하는 자해행위일 뿐이다.
결론은 적당량을 마시되, 꼭 마셔야 할 때는 2, 3일 이상 간격을 두어 간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 마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두 달간은 간으로서는 시련의 계절이다. 애주가들의 건강한 음주문화가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서동진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교수·내과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