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세계적인 물리학자 셸던 글래쇼와 스티븐 와인버그는 1950년 이 학교를 함께 졸업한 단짝 친구로 유명하다. 그들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고, 나란히 코넬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46세가 되던 해에 똑같이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교수가 된 후에도 함께 약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통합하여 기술하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해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진정 ‘오래 두고 사귄 벗’이라 할 만하다.
▼스스로 해결해야 두뇌 발달▼
글래쇼는 자서전에서 고등학교 때 와인버그와 함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낑낑대며 함께 풀었던 시간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학문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공부를 잘 하는 기술’에 관한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 책에는 뭐라고 써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답을 보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푸는 것, 책을 많이 읽어 사고력과 상상력을 넓히는 것,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비판적 논리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보다 더 좋은 공부 기술은 없으리라. 글래쇼와 와인버그처럼 서로 도와가며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 진부한 진리를 실천하는 학생은 요즘 많지 않다. 초등학생부터 고3 수험생까지 온종일 학원가에서 맴돌던 이들은 과외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문제의 유형을 파악해 정해진 풀이 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원 강사와 과외 선생이 하는 일이다. 학원 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풀이과정을 꼼꼼히 칠판에 적고 학생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점수야 오르겠지만 스스로 문제를 푸는 아이들의 능력은 점점 형편없어진다. 아무도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아니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 아래서는 수능시험이 폭넓은 사고력을 키우는 좋은 문제들로 채워져도 학생들에겐 문제 유형을 파악해 학원 강사가 외워둔 풀이 방법을 적용해야 하는 암기 문제가 돼버리는 것이다.
폭넓은 독서와 비판적 사고를 테스트하기 위해 대학은 논술 시험을 보지만, 학생들은 논술 문제집의 발췌된 지문만 읽고 학원 강사가 뽑아준 도식적인 답안을 외워 쓰고 나올 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원과 과외를 멀리하고 학습지를 줄여야 한다. 브롱크스 과학고의 연구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답을 보지 않고 문제를 푸는 것만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걸 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모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의 자습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능동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읽을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을 준다거나, 아이들이 쓴 글을 봐준다거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조언하는 일은 선생님과 함께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단지 과외비와 학원비를 대주는 것으로 부모로서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들 걱정은 알지만…▼
설령 학원과 과외의 문제점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만둘 용기가 있는 부모는 흔치 않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만 정보에서 소외되거나 낙오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 마음속에는 ‘자식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의지보다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하는 욕구가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부산을 방문한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 조지프 렌줄리 소장은 가장 이상적인 과학 영재로 여성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을 꼽았다.
‘침묵의 봄’(1962)이란 저서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화학살충제의 남용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카슨은 지적으로도 매우 뛰어날 뿐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으로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학생들이 다 영재일 필요는 없겠지만, 답안지가 없으면 문제집 하나 풀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은 지금 카슨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정재승 고려대 연구교수·물리학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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