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기술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과정을 거쳤다. 자기복제를 하는 인터넷 웜(worm)이 바이러스와 결합,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잠입해 순식간에 자기복제를 한 뒤 이것과 연결된 네트워크에 엄청난 부하를 일으켜 시스템을 작동불능 상태로 만든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망과 무선인터넷을 건설해왔다. 심지어 국가운영을 맡는 ‘전자정부’를 인터넷에 출범시켰다. 한국은 그동안 이 부문에서 세계 첨단을 걸어왔고 이를 자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 같은 분위기를 ‘너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뒤바꿔 놓았다. 사이버 도시의 다리는 흔들거리고 건물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부실’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이 지경에 이르도록 우리는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해왔다. 2001년에 발생한 ‘코드레드’나 ‘님다’라는 이름의 웜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이 웜바이러스는 당시 학교나 기업의 네트워크를 며칠 동안 마비시켰다. 이 밖에도 각종 바이러스가 새로 등장하면서 컴퓨터에 저장된 개인과 기업의 데이터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한국은 특히 국제 해커들의 ‘중간 경유지’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어느 초등학교 시스템은 아예 ‘포르노 판매사이트’로 돌변하는 웃지 못할 비극까지 벌어졌다. 이런 일들 하나 하나가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서서히 잠식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때가 늦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충분한 대처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으며 그보다 더 중요한 ‘정보기술(IT)강국’의 소망과 의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구호’ 몇 마디로 사태를 미봉하는 구태의연한 대처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에 정보보호 전문가를 보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보보호’ 예산을 사고를 대비한 ‘보험’으로 치부해 ‘쓸데없는’ 비용으로 생각하는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을 국가의 기본적인 도구로 삼아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새 정부를 기획하고 앞으로의 5년을 설계하는 시점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이면서 어찌 보면 ‘쓴 약’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의 긍정적인 면만 보지말고 부정적인 측면에도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정보통신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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