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 ‘사오정’의 의미는 ‘사십오세 정년’이란 뜻으로 쓰인다. 퇴출당했거나 퇴출 위기에 있는 사십대 중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말할 때 ‘사오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종래에는 정년을 으레 50대 후반 혹은 60대의 이야기쯤으로 여기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심리적 정년은 이미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걸려 있다. 일반 직장인들의 심리적 정년이 38세라는 조사보고도 있었는데 결코 엄살이 아니다. 냉엄한 현실이다. ‘사오정’ 신드롬은 바로 이런 세태를 어김없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평균수명 80년 직업수명 20년▼
얼마 전 모 대기업의 신임 임원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190여명의 신임 임원 승진자들의 평균 연령은 정확히 45세였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사’ 타이틀을 거머쥔 그들이었지만 그들 중에서 50대 후반, 60대까지 계속 자리를 유지할 사람은 안타깝게도 극히 드물 것이다.
사실 그들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만년 과장, 부장으로 앞뒤,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면초가가 되어 밀려오는 퇴직 압력을 견디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는 훨씬 더 많은 ‘사오정’ 세대에게는 할 말이 없어진다. 이제 기껏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혹시나 눈치 채고 기죽을까봐 표정 관리하며 출퇴근해 보지만, 속으론 과연 이러다 애들 대학 간다 뭐한다 하며 한창 돈 들어갈 때 대학도 못 보낸 채 손 놓고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사오정’ 세대다. 그래서 큰맘 먹고 끊었던 담배만 애꿎게 피워대기 일쑤다.
종래 우리 사회는 대략 20년 공부하고 그걸 밑천 삼아 30년 일하다 10년쯤 있다 보면 저 세상으로 떠나는 ‘20-30-10’의 이른바 ‘인생 60세’ 시대였다. 사주팔자를 봐도 60년을 기준해서 봤다. 그래서 흔히 50대 이후 대운이 없다고도 했다. 50대까지 있는 운으로 그럭저럭 10년은 버틸 테니 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30년 공부해도 명함 내밀며 행색 보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일은 10년 남짓 반짝하다가 40대 이후 정말 막막해지는 30-10-40의 이른바 ‘인생 80세’시대다. 이미 평균 수명이 70세를 넘어서 80세 고지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으니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생 60세를 기준으로 사주팔자를 보던 것도 시간 틀을 다시 잡아야 할 판이다.
이렇다 보니 50대 후반, 60대에 정년을 맞아 남들보다 신세가 한결 편해 보이는 사람들 역시 갈수록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년 후 살아야 할 시간이 족히 20∼30년은 될 터이니 말이다.
더구나 ‘사오정’ 신드롬은 당사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사오정’ 세대는 우리 사회의 중간허리이고 거의 대부분이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보면 허리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고 한 가정으로 보면 가계가 뿌리째 흔들리는 일이다.
‘사오정’ 세대는 벼랑 끝에 매달려 바위 틈에 삐져나온 나무줄기라도 붙들고 하루 하루를 버티고는 있지만 결국 천길만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도록 우리 사회는 굴러가고 있다.
▼‘허리’ 40대가 살맛나는 사회를▼
더 이상 조직에 미련 두지 말고 일찌감치 독자 노선을 걷자며 ‘1인 기업’ 운운하는 이야기들도 없지 않지만, 그것 역시 특별한 재주라도 있어야 말이라도 붙여볼 일이다.
40대가 불안한 사회는 결국 망한다. 허리가 결딴나는 몸이 온전할 리 없지 않겠는가. 40대를 불안에서 해방해야 한다. 40대가 안정감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십오세가 정년이 되는 ‘사오정’의 사회가 아니라 40대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 정부도 그걸 고민해야 한다.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객원논설위원 atombit@netian.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