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서 집이 있는 진동리까지는 30리길.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차내의 따뜻한 기온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내린다거나 최소한 선도가 떨어질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빙과를 지프의 보닛 위에 올려놓고 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달리는 도중 찬바람을 맞아 녹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떨어져 있어도 옆동네 친구같아▼
때때로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무 가지가 무게에 겨워 적설을 덜어내며 눈보라를 일으키는, 어쩌면 이승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적막한 풍경을 바라보며 조심 운전을 했다. 조롱고개도 통과, 오류동도 통과, 절골도 무사히 통과…. 그런데 방동약수 입구에 이르러 급커브 길을 돌 때에 그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자동차가 갑작스레 나타난 돌부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덜커덩 튀어 오르자 보닛 위에 올려놓은 빙과가 그만 방태천으로 굴러떨어져 급기야 물살에 떠내려가는 것이었다.
‘아∼! 내 붕어싸만코….’
입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절로 아쉬운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 싸만코를 사 올 형편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서운하게도 아내에게 건네줄 선물은 없었다. 다만 장날이면 빠짐없이 장터의 농협 앞 세레스 트럭 위에 앉아 생과자를 구워 팔던 아저씨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눈에 띄지 않더라는 얘기며, 며칠 사이에 우체국 창구의 여직원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랫마을 방동의 눈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써 선물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올 겨울은 여느 해보다 눈이 참으로 많이 내린다. 어제는 내리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3년 전 서울에서 멀리 울진의 불영계곡으로 귀농한 ‘하늘마음 농장’ 가족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동안의 소식을 농장 홈페이지를 통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형제처럼 아주 반갑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상한 것이, 그들이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울진에 살고 있는데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진동리의 꽁밭이나 설피밭 어느 골짝쯤에 살고 있는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졌는데 아마도 인터넷이라고 하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 놓은, 종전과는 사뭇 다른 이웃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종전의 혈연, 지연 중심으로 엮어지던 이웃관계가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맺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시대의 이웃은 전국 단위로 망라되는데 내 경우만 하더라도 인터넷망을 통해 맺은 이웃이 더 많을 정도다. 진동골짜기를 벗어나 울진의 불영계곡에도 이웃이 있고, 지리산 자락에도 있고, 전라도 땅끝 마을은 물론 서울에도 선량한 이웃이 많이 있다.
이 밖에도 인터넷은 다방면에 걸쳐 활용가치를 지니는데 시골에 들어와 굳이 세상사와 절연한 채 살아가려는 은둔자가 아니라면 인터넷상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가 빈약한 시골에 들어와 살아가자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하고도 유일한 방편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를 통해 창작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도 교환할 수 있으며 쇼핑몰을 이용한다거나 아니면 거꾸로 시골에서 수확한 농산물이나 작품을 택배를 통해 직거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나누는 넉넉한 인심▼
그리고 가만히 보면 오프라인상에서 삶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있어 상당히 적극적이며 심지어 공격성까지도 띠고 있는 데 비해 온라인상에서 삶을 일궈 가는 네티즌들은 달빛처럼 은은한 심성을 지녀 겸양과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아 보인다. 험한 불영계곡으로 귀농한 초보 농사꾼 박찬득-소피아 ‘하늘마음농장’ 부부도 그러한 인터넷 이웃 중의 하나이다. 하루빨리 그들의 고달프기만 한 귀거래사가 평화로운 운율을 얻어 도연명의 노랫가락처럼 한없이 목가적으로 들려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최용건은 누구?▼
1949년생.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 대성고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96년 가을 부인과 함께 강원 인제군의 산간마을인 진동리에 정착했다. 그림을 그리며 농사도 짓고 민박도 치며 살고 있다. 에세이집으로 ‘흙에서 일구어낸 작은 행복’(열음사·99년),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푸른숲·2001년) 등을 펴냈다.
최용건 농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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