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김상환/대한민국은 몇 살인가

  • 입력 2003년 3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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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몸에 딱 맞는 새 옷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예전의 어머니들은 옷을 살 때면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자식들이 2, 3년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사이즈를 고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이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무척 길었던 하루다. 학교에서 돌아와 한참을 놀았는데도 해가 떨어지지 않았고, 무슨 좋은 날이 있으면 그토록 손꼽아 기다린 이후에야 겨우 찾아왔다. 일주일이 하루 같은 요즘에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다.

▼‘조급증-망각’ 유아기의 특성▼

이런 불가사의는 어느 무명의 프랑스 의사가 남긴 설명을 읽고서야 해소될 수 있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아이가 하루를 길게 느끼는 것은 혈액순환과 그에 따른 신진대사가 빠르기 때문이다. 반면 신진대사가 느린 노인은 그만큼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낀다. 이것이 똑같은 상처를 입더라도 쉽게 아무는 아이와 더디게 낫는 노인의 차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하루살이의 하루가 왜 인간의 일생만큼 길 수 있는지 쉽게 이해된다. 신체의 리듬이 인간보다 수십, 수백 배 빠르면 주어진 시간 동안 그 만큼 많은 것을 겪고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대한민국의 나이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의문을 가져온 것은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다. 나는 한때 일상의 부조리들이 우리나라가 성장기를 지나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상들이려니 했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 무질서한 거리와 날림공사, 잦은 붕괴사고, 냄비근성, ‘빨리빨리’의 조급 체질 등은 단순한 후진성의 징표이기에 앞서 역동성의 징표이려니 했고, 일정한 성장기를 거치면 언젠가 한국 사회도 서양 사회만큼 안정된 질서에 도달하리라 믿었다.

사실 서양의 소설을 들추다가 아버지가 배우던 교사 밑에서 아들이 다시 훈계를 듣고, 아버지가 먹던 사탕을 아들이 똑같은 가게에서 사먹는다는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적 질서와 규범의 척도가 한결같으므로 자식은 아버지가 살아온 모습에 비추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제의 척도가 내일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서 오늘의 규범은 언제나 임시적이고, 따라서 그만큼 구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하는 현실에 꼭 맞는 제도와 규칙, 꼭 맞는 도로와 시설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뿐더러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이런 왕성한 시절에 사람들은 아이처럼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당연히 표준이나 규칙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본능과 예감에 따라 움직이고, 그런 비합리적 행동은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와우아파트에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기억하기 힘들 만큼 많은 재해는 그런 비합리적 행동의 값비싼 대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처참했던 재난들은 쉽게 잊혀지곤 했다. 이것도 역시 상처가 금방 아물고 고통을 쉽게 잊는 유아기의 체질적 심성인지 모른다. 우리는 아마 그런 체질과 심성 덕분에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하고 월드컵 4강 신화도 이루어냈을 것이다.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과 활력을 여러 차례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달라진 나라의 모습을 확인, 또 확인했다.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시대임을 천명하면서 취임사의 대미를 호쾌하게 장식했다. 그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염원의 발로라기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성장기를 거치면서 쌓아온 역량의 표출일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나라도 어른이 되었음을 스스로 자각하자는 대내적 제안이자, 또 그런 대접을 해달라는 대외적 요구일 것이다.

▼慘事반복 없어야 성숙한 나라▼

하지만 대한민국은 과연 몇 살일까. 과연 이 나라는 어른 대접을 받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고 성숙한 국가일까. 이것이 이번 대구 참사의 희생자들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그토록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기가 끝난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다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전동차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어간 영혼들은 대한민국의 나잇값을 묻고 있는 셈이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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