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윤호진/가난한 공연계 ‘附價稅 큰짐’

  • 입력 2003년 3월 7일 20시 20분


코멘트
젊은 시절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대사관 창구에 서류를 내밀자 심사관이 대뜸 “왜 세금을 낸 내용이 하나도 없느냐”고 물었다. 사업자가 비자를 낼 때 구비해야 하는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증명서에 별 내용이 없었던 탓이다.

심사관은 세금을 내지 않았으니 비자를 발부할 수 없다고 했다. 신청서에 ‘NO’라는 도장이 찍혀지자 참담한 기분에 이렇게 되뇌었다. “누구는 세금 안 내고 싶던가. 나도 돈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면서 살고 싶다.”

▼수입의 20% 세금-수수료로▼

그때의 상심 때문인지 공연제작사를 운영하는 나는 현재 꽤 많은 세금을 낸다. 세금을 많이 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벌었다는 증거이니 즐거워할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문화 발전이란 대승적 차원에서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공연 수입에 대해 무조건 10%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그뿐인가. 문예진흥기금이란 명목의 준조세로 수입의 6%를 떼어내야 한다. 여기에다 관람권 판매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공연 수입의 근 20%가 날아간다.

영세한 공연 단체들에 이 돈을 잘라내는 것은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다. 영화사나 출판사 등에 비해 구멍가게 수준인 공연단체는 매표 수입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세금 부담까지 지면 늘 라면과 자장면으로 허기를 달래야 한다.

혹자는 예외 없는 납세의 의무에 대해 말할 것이다. 또 혹자는 부가가치세란 사업자가 번 돈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낸 세금을 사업자가 대신 내주는 것뿐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나아가 세금만큼 티켓 가격을 올리면 그만이지 않겠느냐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지출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분야인 것은 사실이다. 관람료가 비싸면 공연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티켓에 10%의 부가세를 추가로 부가하겠다는 말은 관객에게 공연장에 오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래서 많은 공연단체들은 관람권 가격을 어찌 매길지 고심한다. 수지를 맞추려면 두 가지 방법뿐이다. 제작비를 줄여 허술한 공연을 마련하거나, 좋은 작품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부가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순수예술행위’로 판단되면 부가세가 면제된다. 막말로 세금을 낼 형편이 안 되면 아예 돈을 안 버는 공연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공연만으로 이 땅의 문화가 진작될 것인지 회의적이다.

분명 공연은 부가세가 면제되는 생필품은 아니다. 생필품이 아니므로 세금을 징수해야겠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공연은 아직도 큰돈을 못 벌고 있고, 설사 번다해도 모두 다음 공연을 위한 밑천으로 쓰인다. 게다가 공연은 국민의 문화 복지에 기여하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공익에 대한 기여도로 치자면 현재 부가세가 면제되는 도서출판 분야에 전혀 뒤질 것이 없다. 다른 문화 부문과 비교해서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다른 산업과 달리 준조세인 문예진흥기금을 강제 징수하니 불합리한 이중과세나 다름없다.

무조건 세금을 면제해달라고 떼쓰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일단 공연시장이 다른 분야처럼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만이라도 정부의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수(稅收)로 보면 푼돈이겠지만 작은 세제 혜택은 공연계가 자립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세제혜택이 경쟁력 밑거름▼

이것은 공연계 종사자의 넋두리만은 아니다. 최근의 한 문화산업포럼에서 덕성여대 김경묵 교수는 “정부의 공연정책은 적자 운영으로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단체에 초점이 맞춰져 공연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분야도 영상, 음반, 비디오, 게임처럼 산업으로서 육성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적시한 것이 바로 부가가치세 면제였다.

윤호진 단국대 교수·공연제작사 '에이콤' 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