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진흡/국세청의 '이중 잣대'

  • 입력 2003년 3월 10일 19시 22분


“국내 기업은 괜찮지만 외국 기업은 안 돼요.”

10일 오전 국세청의 한 과장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이날 보도된 ‘외국계 기업 900곳 탈세조사’ 기사가 잘못됐다며 화를 냈다. “외국 법인에 혐의 내용을 개별 통보한 것은 맞지만 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특히 “국내 기업이라면 몰라도 외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보도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이 때문에 ‘통상 마찰’이 생기면 책임질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기사에 포함된 ‘탈세혐의 통보 및 불성실신고시 세무조사 방침’이 ‘세무조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항의’에서 느껴지는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시각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그는 “국내 기업을 조사한다고 보도하는 것은 괜찮지만…”이라고 말했다. 세무조사 보도가 나가더라도 국세청 눈치를 봐야 하는 국내 기업은 항의를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반면 외국 기업은 세무조사 얘기만 나와도 해당 국가에서 항의하기 때문에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외 기업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잣대’인 셈이다.

정부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 당국이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군림하면서 외국 기업에는 약하다면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가뜩이나 외환위기 후 외국 자본을 우대하는 바람에 국내 기업들은 ‘역(逆)차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는 ‘족쇄’를 채우면서도 외국 기업에는 허용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땅에서 외국 기업보다 더 사업하기 힘들다는 국내기업들의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린다.

국내외 기업을 가릴 것 없이 기업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예측 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정책’이다. 국세청이 이런 식의 이중 기준을 갖고 국내 기업을 대하는 한 아무리 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밖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송진흡기자 경제부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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