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혁준/고향땅 밟은 윤이상 음악魂

‘금수강산 그 정기 여기 모이고 반만년 오랜 슬기 다 엉겼도다. 바르거라 의롭거라 씩씩하거라 우리나라 떠메고 나갈 통영 어린이….’

27일 오후 경남 통영시 실내체육관. 2003통영국제음악제의 부대행사인 ‘윤이상 교가 합창제’ 리허설 현장에는 고사리손을 마주 모은 400여명의 어린이들이 저마다 예쁜 입 모양을 하고 목청껏 노래하고 있었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이 작곡하고, 역시 통영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청마 유치환이 가사를 쓴 통영초등학교 교가가 넓은 체육관을 울리고도 남을 만큼 필자의 귀를 파고들고 있었다. 모교의 후배들에 의해 불리는 교가, 그동안 들어왔던 윤이상 음악과는 또 다른 감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아무리 단조로운 선율일지라도 윤이상 특유의 번득이는 천재(天才)가 고스란히 묻어 나옴은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우리 가락이요, 우리 리듬이었다.

▼‘축제의 바다’ 통영국제음악제 ▼

통영은 지금 개나리,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가운데 섬과 바다와 뭍은 ‘소리 있는 아우성’으로 음악의 깃발에 흠뻑 빠져 있다. 시민들은 교가를 통해 윤이상을 만나고 있다. 윤이상이 통영 시내 대부분의 학교 교가를 지어준 것.

4년 전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현대음악제로 조촐하게 시작된 지역축제는 이제 세계인이 관심을 기울이는 국제음악제로 그 위상을 높여 가고 있다. 통영시민문화회관, 페스티벌 하우스, 한산도 등 통영 일대에서 13개국 600명의 연주자가 참가해 4월 2일까지 열리는 올해 축제의 주제는 ‘꿈’. 주빈 메타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폐막 공연을 장식할 예정이고, 개막 연주회에서는 오보에의 최고 명인 하인츠 홀리거가 이끄는 앙상블 모데른이 무대를 꾸몄다. 평생을 우리 소리에 천착했던 윤이상의 뜻을 좇아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이 종묘제례악을 선보였다. 또한 부제인 ‘음악과 종교’에 걸맞게 1479년 창단해 무려 524년 동안 러시아의 영혼을 노래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카펠라 합창단이 최초로 내한해 이곳 통영을 찾았다.

24일 밤 전야제 후 하늘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을 밝히는 가운데 거제도 정신지체아 요양시설 ‘애광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통영시내의 치과의사 이민기씨가 초청한 것이다. 27일에는 남망산 기슭, 시가지 한복판에 이날 공연될 ‘나이트 스튜디오’를 알리는 화려한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현수막 하단을 자세히 보니 협찬사가 ‘충무할매김밥’으로 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축제를 아끼는지 알게 하는 단적인 예다. 이미 자원봉사 후원회 ‘황금파도’ 회원은 포화상태다. 지역 방송사인 마산 MBC는 매일 특집으로 음악축제방송을 전국으로 전하고 있어 저질 오락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는 방송계에 신선함을 더하고 있다.

음악 수준 또한 최고다. 27일 세종 솔로이스츠의 완벽한 앙상블은 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초량린의 초절기교와 함께 객석을 숨죽이기에 충분했다. 개막 연주회에서 윤이상의 걸작인 오보에 협주곡이 끝나자 청중 대부분이 기립했다. 서양악기 오보에가 우리 전통악기 피리로 화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지역민을 품에 안은 통영국제음악제는 민과 관이 하나가 되어 순항 중이다. 꿈에도 조국을 잊지 않았던 윤이상의 소원이 점차 현실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편히 눈을 감을끼라…”▼

“이제 한국 정부는 하루빨리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윤이상과 절친한 친구였던 하인츠 홀리거의 말처럼 앞으로 그의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날, 드디어 ‘상처받은 용’은 다시 날개를 달고 비상할 것이다.

27일 오후 도천동 윤이상의 생가 마당에 섰다. “그 친구 날 껴안고 울기만 하두만. 이제야 편히 눈을 감을끼라….” 베를린에서 단 30분간 윤이상을 만나고 왔다는 통영사람 김춘수 시인의 회고대로 앵초꽃 피는 4월 초순 ‘한려수도로 아득히 트인 귀’가 음악소리로 진정 트이고 있었다.

유혁준 방송작가·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