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포럼]강창일/'제주 4·3' 명예회복의 첫발

  • 입력 2003년 3월 31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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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이 흘렀다. 제주도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면서 한 맺힌 기억이 되었던 제주 4·3사건이 발발한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것이다. 3월 29일 정부차원의 ‘4·3 진상보고서’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2년여간 전문인력을 투입해 자료를 수집, 분석한 결과를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새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비록 정부가 여기에 ‘6개월 후에 새로운 사실이 입증되면 수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어 완벽한 보고서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공산폭동’으로 매도됐던 제주 4·3 사건은 이번 ‘4·3 진상보고서’에서 ‘1947년 3월1일 3·1절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남로당 제주도당 등이 경찰탄압에 저항하고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기치로 48년 3월 무장봉기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됐다. 보고서는 이후 수많은 비무장 민간인들이 재판 절차 없이 국가공권력인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당하고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아울러 정부에는 무고하게 희생당한 도민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99년 12월 ‘4·3특별법’이 제정된 후 제주도에서 신고받은 희생자 수는 2001년 5월30일 현재 1만4028명으로 이 중 여성이 2985명, 10세 이하 어린이와 61세 이상 노약자가 1674명이다. 여기에 20세 이하 청소년(3026명)과 당시 손자 손녀를 봤을 50대(899명)까지를 합하면 많은 희생자가 분별력 없는 나이이거나 노약자와 부녀자다. 그나마 이는 신고한 경우다. 온 가족이 몰살당해 신고할 유족조차 없는 희생자들도 있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피해의식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은 희생자들도 많다. 그래서 무려 3만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 설(說)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 피고 인권의식이 고양되면서 ‘제주 4·3사건’은 재조명되어 이제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다. ‘빨갱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살아왔던 제주도민들은 명예회복의 길목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유세과정에서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국가공권력의 잘못이 드러난다면 ‘4·3’ 영령들과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할 것이며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상상할 수 없는 민간인 희생이 과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결과라면 정부 수반의 이름으로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국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숨기거나 강변하지 않고 반성하는 것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 대통령은 ‘4·3’ 55주기를 맞이해 정부 수반의 이름으로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하는 한편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령하고 유족들의 쓰라린 가슴을 보듬음으로써, 대한민국을 ‘인권과 평화’가 넘실대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온 인류 앞에 선언해야 한다. 그가 이 땅의 양심에게 한 선거공약이 빈말이 아니기를 바란다.

강창일 제주 4·3 연구소장·배재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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