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이봉원/반짝 스타를 원하는가

일본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1년 반. 돌아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뭔가 획기적이고 쇼킹한 것을 보여주려고 준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안 되는 것이 인생인 듯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지만 말이다.

일본에 간 이유는 그들의 대중문화를 직접 접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혼자 일본 TV방송국을 찾아갔다. “한국의 코미디언”이라고 나를 홍보하며 도쿄(東京)의 관광지인 오다이바(お台場)의 한 공원에서 오디션에 응모해 합격했다. 그렇게 해서 후지TV와 NHK방송에 1년여 동안 출연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일본 현지 프로덕션에 소속돼 있지 않은 연기자가 1년여 동안이나 방송에 출연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고생해야 성공’ 日불문율 공감 ▼

일본 코미디는 경륜이 있는 코미디언 서너명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인기도 높다. 그 밑으로 중견, 신인 순이다. 말 그대로 무슨 직장의 서열을 보는 듯하다. 우리처럼 코미디언이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끄는 건 일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미디언은 반드시 고생한 뒤에 이뤄진다’는 불문율 때문이다. 아마추어처럼 보여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만담으로 갓 데뷔한 젊은 코미디언도 최소한 몇 년씩은 소극장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을 정도다.

일본의 한 코미디언이 신문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기억난다. “코미디언이 코미디로 웃기지 못할 때 그 생명은 끝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코미디언이 게임 프로그램에서 물벼락을 맞거나 스포츠 선수처럼 열심히 뛰고 넘어지면서 시청자를 웃긴다. 이런 것은 연예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내 방송 현실은 기성 코미디언들이 소외되고 신인들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데뷔 1년도 안돼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한다. 그 결과 반짝 스타가 양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도 폐기된다. 일본은 프로덕션 시스템이어서 일정 기간 경력을 쌓아야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연기자를 양성하는 프로덕션 시스템이 본격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2001년 일본에서 돌아온 후 ‘b-one 엔터테인먼트’라는 프로덕션을 차렸다. 막상 제작을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사에 기획안을 보여주면 ‘스타급이 없다’는 이유로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연기만 20여년을 하다 보니 경영능력의 한계도 절감했다. 코미디언은 연기만 하면 되지만 경영은 방송 기획부터 사무관리까지를 총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인 개그맨과 탤런트 박준규 이선정 심원철 등 20여명의 연기자와 함께 프로덕션을 어렵게 꾸려 나가면서 새로운 재미도 느낀다. 올해 안에 30, 40대를 위한 코미디 전용극장을 세워 ‘웃으면 복이 와요’ 스타일의 극 코미디를 선보일 생각이다.

최근 아내(개그우먼 박미선)와 함께 ‘옹알옹알 첫걸음’이라는 유아 교육 비디오를 제작했다. 다행히 반응이 괜찮다. 주위로부터 “두 사람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는 것 아니냐”는 질투어린 말을 듣기도 하지만 1993년 결혼한 아내는 내가 의도하는 바를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하기에 편했다. 나는 TV에서는 웃음을 주려 애쓰지만 집에서는 과묵한 가장으로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시청자에 오래오래 웃음 주고파 ▼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이다. 코미디를 보면서 뭔가 남는 것을 원하기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웃기지 않을 때 코미디언을 질책해 달라. 코미디는 심신이 힘들 때 필요한 활력소 같은 존재다. ‘건강하고 밝은 웃음을 찾는 작업’이 나를 비롯한 우리 코미디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약력 ▼

△1963년생 △장안전문대 일본어과 졸업(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 입상(1984년) △KBS ‘유머 1번지’, SBS ‘꾸러기대행진’ ‘좋은 친구들’ 등에 출연 △성인시트콤 ‘파렴치한’(2002년) 제작 △현재 경인방송 ‘소문 만복래’, 코믹드라마 ‘러브 러브’ 등에 출연 중.

이봉원 개그맨·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