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맞았던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영국인 제작자가 뮤지컬로 만들고 미국 브로드웨이가 돈을 버는 삼각관계가 흥미롭다. ‘레미제라블’의 공연 총수입은 18억달러로 ‘캣츠’의 22억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문화상품 하나로 번 돈 치고는 엄청난 액수다. 위고는 “문명 세계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비참하다. 인간은 그 속에서 신음하고 고뇌한다”라고 말한 적 있다. 주인공 장발장과 코제트를 통해서도 위고는 비관적 시각을 드러낸다. 프랑스인 특유의 철학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배출한 영국인은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인 터치로, 미국인은 발 빠른 흥행 전략으로 이 작품을 20세기 최고의 무대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뮤지컬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한 남자를 놓고 사랑하는 코제트와 에포닌이다. ‘학대받는 아동’ 코제트는 장발장의 구원을 받은 뒤 어려움 없이 성장해 마리우스와 사랑을 이루지만 사기꾼의 딸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가 혁명군에 들어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같은 ‘불쌍한 사람들’로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는 이 두 인물을 놓고 관객들은 코제트 편과 에포닌 편으로 확연하게 나뉜다. 에포닌의 노래 ‘나만의 사랑’은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린다.
▷8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처음 진출한 이 작품이 진한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9·11테러로 인한 타격이 직접적인 배경이라고는 하나 모든 사물은 길든 짧든 나름대로 수명을 지니고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원작 소설 못지않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것만으로도 이 뮤지컬은 더없이 ‘행복한’ 작품이다. 9월에는 한국의 ‘난타’가 처음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명품(名品)’을 내놓을 수 있을지 반응이 궁금해진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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