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굿바이 코제트

  • 입력 2003년 5월 2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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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 뮤지컬의 ‘빅4’로는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이 꼽힌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평정한 이들 뮤지컬의 공통점은 영국에서 제작되어 미국에 수출됐다는 점이다. 영국 뮤지컬의 성공은 ‘뮤지컬의 황제’로 불리는 영국인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뮤지컬 ‘빅4’는 모두 매킨토시가 제작한 것이다. 그가 지난해 중국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처음 상륙시키면서 꺼내 든 카드는 ‘레미제라블’이었다. 제목 그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다룬 작품의 성격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진출의 첫 작품으로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맞았던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영국인 제작자가 뮤지컬로 만들고 미국 브로드웨이가 돈을 버는 삼각관계가 흥미롭다. ‘레미제라블’의 공연 총수입은 18억달러로 ‘캣츠’의 22억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문화상품 하나로 번 돈 치고는 엄청난 액수다. 위고는 “문명 세계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비참하다. 인간은 그 속에서 신음하고 고뇌한다”라고 말한 적 있다. 주인공 장발장과 코제트를 통해서도 위고는 비관적 시각을 드러낸다. 프랑스인 특유의 철학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배출한 영국인은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인 터치로, 미국인은 발 빠른 흥행 전략으로 이 작품을 20세기 최고의 무대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뮤지컬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한 남자를 놓고 사랑하는 코제트와 에포닌이다. ‘학대받는 아동’ 코제트는 장발장의 구원을 받은 뒤 어려움 없이 성장해 마리우스와 사랑을 이루지만 사기꾼의 딸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다가 혁명군에 들어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같은 ‘불쌍한 사람들’로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는 이 두 인물을 놓고 관객들은 코제트 편과 에포닌 편으로 확연하게 나뉜다. 에포닌의 노래 ‘나만의 사랑’은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린다.

▷8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처음 진출한 이 작품이 진한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는 소식이다. 9·11테러로 인한 타격이 직접적인 배경이라고는 하나 모든 사물은 길든 짧든 나름대로 수명을 지니고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원작 소설 못지않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것만으로도 이 뮤지컬은 더없이 ‘행복한’ 작품이다. 9월에는 한국의 ‘난타’가 처음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고 하는데 우리도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명품(名品)’을 내놓을 수 있을지 반응이 궁금해진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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