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경진/심장 표면 '토네이도'의 비밀

심장마비는 아주 치명적인 병적 상태로 돌연사의 원인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매년 25만명 정도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사망자들 가운데는 신체 건강한 젊은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된다. 3년 전쯤, 프로야구 경기 도중에 쓰러진 전 롯데 임수혁 선수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심장마비를 유발하는 많은 원인이 ‘심실세동(心室細動·ventricle fibrillation)’에 있다. 이는 심실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하고 파르르 떠는 현상이다. 이 상황이 되면 심실은 본 기능을 상실하며 뇌에 대한 혈액 공급이 중단되고, 5분 이상 지속될 경우 환자는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심실세동은 대부분 예견하지 못한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생명에 위협적이다. 하지만 운 좋게 병원이나 응급처치가 가능한 환경에서 일이 벌어지면 ‘제세정기(defibrillator)’를 사용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 의료기기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수 암페어의 강력한 전류를 몸에 흘려주는 것으로 환자를 심실세동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알려져 있다.

이 전기 충격의 역할은 무엇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심실세동 상태의 심장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심실세동은 심실의 빈맥(頻脈·ventricle tachycardia·맥박의 횟수가 정상보다 많은 맥)에 뒤이어 나타나며 이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심실 빈맥은 정상적인 경우보다 매우 빠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심박(心搏)의 경우를 일컫는다. 놀랍게도 최근 심실 빈맥의 원인은 심실 표면에 형성되는 나선형의 ‘전기적 토네이도’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토네이도는 자발적으로, 또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일단 형성되면 고유의 핵을 중심으로 빠른 주기로 회전하며 유지되기 때문에 이보다 상대적으로 느린 심실 고유의 박동원(搏動源·pacemaker)을 무력화시킨다. 심실 전체가 이 전기적 토네이도의 빠른 회전 주기에 동기화되는 것이다.

이 토네이도의 중심 핵 부분은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공간적인 이동도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여러 개의 작은 토네이도들로 뒤섞인 복잡한 혼동의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상태가 심실세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심실 조직의 각 부분은 무작위로 분포된 전기적 토네이도들 때문에 비동기화(非同期化)되고, 정상 상태의 동기화된 심실 수축이 불가능해진다. 이때 심전도 상에서는 매우 빠르고 불규칙적인 리듬이 나타난다.

결국 제세정기의 전기적 충격은 심실세동을 유발하는 전기적 토네이도들을 순간적으로 제거하는 데 쓰이는 셈이다. 전기 충격이 가해진 후 환자의 입장에서는 원래 심장 고유의 박동원이 다시 제 기능을 해 주길, 그리고 이 토네이도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집이건 자동차건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무서운 힘으로 휘날려 버리는 예측불허의 기상 토네이도와 마찬가지로 심장 표면에 불시에 나타나는 전기적 토네이도 역시 인간에게는 아주 ‘겁나는 존재’인 것이다.

심장 표면에 나타나는 이 무서운 ‘전기적 토네이도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점은 우리 자연 전반에 걸쳐 매우 다양한 스케일에서 유사한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고(실제 기상과 관련된 토네이도와는 무관함), 이들이 최근 등장한 복잡계 물리학의 핵심 이슈들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물리학자로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전기적 토네이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이것은 왜 불안해져 여러 개로 나뉘는 것일까? 전기적 토네이도들의 형태와 이들의 동력학적 특성은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기다려진다. 이 분석은 아마도 불시에 찾아오는 심실세동의 원인에,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에 새로운 빛을 던져 줄 것으로 보인다.

이경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