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수일/"종다리-제비 언제 봤더라…"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10분


나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새들을 무척 좋아했다. 서울 동대문 밖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시절만 해도 집 근처 뒷산과 하늘에서는 많은 종류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휘영청 달 밝은 초가집 지붕 위로 “꽈글, 꽈글”하며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에서 메추라기 몇 마리를 쫓아 온종일 뛰어다니다 발가락이 모두 얼어버렸던 기억도 있다. 하늘에 솔개 무리가 나타나 원을 그리며 돌다가 바람을 타고 사라지면 “솔개 떴다, 병아리 감춰라…”라고 외치며 솔개들을 따라 한참을 걷고 뛰곤 했다.

봄철 진달래가 필 무렵, 개천가에 나가 별똥처럼 쏟아져 내리는 종다리 소리를 듣는 게 왜 그리도 좋았던지. 그러다 밤이 되면, ‘소쩍’거리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 무렵 이런저런 새들의 모습을 관찰한 것을 밤마다 기록장에 남기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일상을 보며 자나 깨나 근심이 크셨던 듯했다. 오래전 고인이 된 어머니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지금 나는 장차 생물교사가 되겠다고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93년 기상청 전신인 국립중앙관상대가 발표한 소식은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방 측후소와 관상대가 남쪽에서부터 기록해온 개나리 진달래꽃 처음 핀 날, 제비를 처음 본 날, 종다리 뻐꾸기 울음소리 처음 들은 날들을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보고 듣기도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기록조차 별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도 봄마다 학교 건물 문간에 소위 ‘생물 계절 관찰표’를 붙여두고 오가는 학생들에게 계절변화와 눈에 띄는 생물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엇을’부터 기록해 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 이 표는 수십년이 지난 뒤, 지금은 흔히 보았던 동식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벌써 30여년이 지난 내 어린 시절의 야외기록장을 볼 때와 같은, 그런 생물계절을 학생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미 많은 새들이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경기 광릉까지 산을 넘어 걸어가서 크낙새를 보았던 기억도 새로운데, 이제는 크낙새가 잠자리로 삼았던 고목마저 다 삭아 그 자리에 없다. 지난 수십년간 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골을 찾아 헤매어도 크낙새는 다시 볼 수 없다. 과거 친숙했던 따오기 저어새 뜸부기 같은 많은 새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고 있다.

남은 새들도 이제는 어딘가를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다. 새가 있는 곳이라면 비무장지대, 천수만, 낙동강, 제주도, 흑산도, 울릉도, 독도와 그 밖의 무인도까지 학생들과 함께 찾아다니지만, 학생들은 200종을 채 만나기 전 졸업을 맞는다. 한국에 서식하는 것으로 기록된 새 400여종 가운데 200여종은 점차 사라져가는 새들이란 얘기다. 이들이 언젠가는 멸종위기 종이 되고 복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조류탐사를 많이 나간다는 것이 알려진 탓인지 이따금 낯선 분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언제 새 보러 갈 때 불러주세요.” 그래서 잃어버린 우리 자연의 정서를 되찾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자연에 얽힌 옛이야기와 느낌을 어린 아이들에게 전하고픈 작가 등….

잃어버린 새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전화를 받으며,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버린 내 어릴 적 뒷동산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으면, 단지 하늘을 나는 새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 자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약력 ▼

1954년생.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야생동물생태학 석사와 환경생물학 박사 취득. 위스콘신 자연사박물관 조수(鳥獸)부 연구관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제두루미재단 극동지역 전문위원과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종보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수일 한국교원대 교수·생물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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