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데요?”
“말을 못해요.”
학원에 찾아온 어느 초등학교 4학년생 엄마의 하소연이다. 영어로 글은 잘 쓰는데 말을 하라면 신경질을 내고 외국인을 만나도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답답함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한 TV광고처럼 다른 집 아이들은 “Can I have some milk?”라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왜 못할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관심은 보이되 간섭은 자제 ▼
“아니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가 말을 하면 얼마나 잘 하겠어요? 그리고 광고에 나오는 아이들 발음은 대개 외국인 발음을 더빙한 것이거나 촬영하는 날 한 문장만 집중적으로 연습시킨 거예요. 괜히 조바심 낼 것 없답니다.”
조바심은 결국 지나친 열의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영어와 친해져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영어 공부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부모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아이의 영어 교육에 관여해야 좋을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관심은 보이되 간섭은 자제하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어 아이의 영어를 끄집어내자’는 것이다.
항간에는 필자의 어머니에 대해, 나를 아주 어릴 적부터 책상머리에 잡아두고 하루에 영어 알파벳을 스무 번씩 읽고 쓰게 했다는 얘기가 나돈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모녀는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 공부에 관한 한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은 “외국을 가 보니 이런 음식을 먹고 살더라. 좋으면 이런 춤을 추고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하더라. 그런데 그 발음이 이렇더라”는 식의 얘기뿐이었다. 또 지구본을 앞에 두고, “엄마가 다녀온 곳이 여기인데…”라며 손가락으로 콕 짚어 주고, 그곳에서 가져온 그림엽서들을 ‘부교재’로 이용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 속에서 ‘굿모닝(Good morning)’과 ‘익스큐즈 미(Excuse me)’를 알게 됐다. 만일 집안 구석구석에 영어 카드가 붙어 있고, 하루에 서너 번씩 큰 소리로 그 단어들을 복창하며 정기적으로 시험까지 보았다면 난 아마도 “으악!” 하며 도망갔을지 모른다.
그렇게 만난 영어는 나에게 한번도 ‘공부’였던 적이 없었다. 알파벳을 그림의 일부로 알고 장난삼아 그 위에 덧그림을 그리던 세 살 때부터 나는 영어와 친구 같은 사이였다. 때로는 좌절을 안겨주고(소위 유학파나 교포가 아니라는 것은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은근히 무거운 콤플렉스를 느끼게 한다), 자학하게 하고(실제 대화에서 하도 단어가 나오지 않아 벽에 머리를 ‘콩콩’ 박은 적도 있다), 울게 만드는 게 영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수줍어하고 매사에 자신 없어 하던 필자가 중학교에서 영어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과 학과 생활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니, 영어는 나에게 ‘소중한 은인’인 셈이었다.
나는 책이나 TV에서 영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악착같이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약간 자신감이 붙을라치면 또 좌절하곤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1년 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박사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마음 비우고 천천히 전진을 ▼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더 잘 배울 수 있게끔 돕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영어 공부의 난점과 암초들, 그리고 그런 장애물들을 어떻게 피해 갈 수 있는지 확실한 근거를 찾는 것이 나의 최대 관심사다. 이제까지 확보한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마음을 비우고 목표를 정확히 보자. 그리고 확실하게 전진하자’는 것이다. 영어는 우리에게 갈등만 주려고 있는 게 아니다. 분명 영어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많은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약력 ▼
△1966년 생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1988)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 졸업(1990) △EBS TV ‘영어회화’, KBS FM ‘이보영의 Yes, I can’ 등 진행 △저서 ‘미국에서 살다 오셨나요?’ 등
이보영 영어 강사·㈜EBY 에듀 그룹 대표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