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반영한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 법안은 표면상의 취지와 달리 상당한 위험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느닷없는 예술委 추진 이해안가 ▼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제도를 꾸준히 연구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성숙한 의식보다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근본부터 허물고 새로 짓겠다는 혁명적 발상이 앞서는 듯하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같은 증세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번 예술위 추진도 “이제는 문화예술에 대해서조차 정권과 코드가 맞는 세력을 전면에 포진시켜야겠다”는 음모적 발상에서 나온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예술위 문제는 영화진흥공사를 해체하고 영화진흥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대표성 논란 등 첨예한 갈등을 겪었던 지난 정권 때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큰 틀에서 현재의 문예진흥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될 이 예술위 안(案)의 골자는 문화부 장관이 민간 예술인 가운데 위촉한 위원 11인에게 문화예술 지원사업 운영에 관한 거의 전권을 맡긴다는 데 있다.
이 위원회가 모든 운영 사항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지원대상 및 예산 배정에 대해서도 직접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민간 전문인들로 구성된 분야별 지원심사위원회에 판단을 일임하도록 했으나 이제는 위원회가 그 위에 군림하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예술위의 위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현장 예술계는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전체 위원의 수가 11인이라면 예술 각 분야를 대표할 사람은 분야별로 1명 정도밖에 될 수 없다. 언뜻 꼽아도 문학 음악 영화 연극 등 지원 대상 분야가 10개를 훨씬 넘기 때문이다. 결국 각 예술 분야는 예술위원으로 선정된 한 사람의 전횡에 휘둘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지난 정권의 영화진흥위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영화진흥위는 그래도 영화라는 한 분야만을 다루기 때문에 영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느 정도는 대변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천하겠다는 것을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선공약 실천은 현재의 문예진흥원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그 위상을 강화하는 방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예술위로의 개편을 추진하기 때문에 그 배경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정권 출범 초기에 문예진흥원 임원진 개편 인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듯, 인위적으로 예술계의 특정 세력으로 하여금 주도권을 장악케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더구나 예술위로 개편하는 명분으로 ‘민간주도’라는 점을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원 전원을 문화부 장관이 위촉토록 한 것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 일색으로 진용을 짜겠다는 속셈과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장관이 위원위촉 정치색 개입 여지 ▼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문화예술은 인위적으로, 특히 정치권력의 힘으로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이 동서고금에서 확인된 역사의 교훈이다. 문화예술은 궁극적으로 수용자인 국민 대중의 것이지 공급자의 노획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대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권에 의해 선택받은 ‘예술가’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 과거 어느 독재정권도 예술을 통한 대중조작에 성공한 예가 없다. 참여정부라는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이렇게 ‘참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예술계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한줌의 홍위병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모르면 차라리 가만있으라는 옛말이 결코 헛말이 아니다.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연극영화학·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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