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경미/생활속의 '황금분할'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06분


선거 관련 기사를 읽다 보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수학용어 가운데 하나가 ‘황금분할’이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후보나 당이 유권자의 표를 황금분할했다’는 표현을 접하게 된다. 여기서 황금분할이란, 예컨대 한쪽은 표를 많이 얻는 실리를 취하고 다른 쪽은 명분을 얻는 것과 같이 양쪽 모두에 ‘윈윈’ 상황일 때 주로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황금분할 투자 상품’이라는 선전문구도 볼 수 있는데, 주식과 채권에 적당 비율로 분할 투자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쯤 되면 가히 ‘황금분할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황금분할은 수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황금분할이란 짧은 부분과 긴 부분의 길이의 비가 긴 부분과 전체 길이의 비와 같아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략 ‘1.618 대 1’ 정도가 된다. 황금분할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심미안에 가깝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비율로 인식됐다. 황금분할은 파르테논 신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등의 건축물이나 밀로의 비너스상 같은 예술품에 반영되었고, 특히 중세에는 ‘신의 비례’라 불리며 신성시됐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황금분할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신용카드의 가로와 세로는 8.6cm, 5.35cm이므로 그 비율이 황금분할에 가깝다. 또 작곡가 바르토크는 악곡의 클라이맥스를 황금분할 지점에 배치하고 한 마디 내에서의 리듬 결합에도 황금분할을 적용했으니 황금분할의 적용 범위는 건축물과 조각품을 넘어서 음악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어진 길이를 분할한다고 할 때 정중앙 지점은 약간 답답하고 정직하게 느껴지고, 한 부분의 길이가 다른 부분의 길이에 비해 너무 길면 변화가 지나치고 과장되게 느껴진다. 절충하여 변화가 지나치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정하다 보면 황금분할에 가까운 비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즉, 황금분할을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경우라도 1.618 대 1에 근접하는 값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황금분할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신비화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처음의 논의로 돌아가자. 선거기사나 금융상품 선전에 나타난 황금분할이라는 표현은 사실 1.618 대 1이라는 수학적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다. 혹자는 이런 지적이 수학적 엄밀성의 잣대를 동원해 언어 표현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수학 관련 직업 종사자의 고지식한 사고의 소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수학적 개념이 왜곡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수학 용어가 얼마나 언어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일상적인 표현 중 수학 용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 사람의 공통관심사 해결의 실마리를 위해 ‘최대공약수’를 찾는다거나, 구성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할 때 ‘방정식’을 세운다고 우리는 말한다. 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할 때 ‘희비쌍곡선’, 두 가지를 함께 강조하고 싶을 때 ‘타원의 두 초점’, 하나의 변화에 다른 것이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독립변수에 대한 종속변수’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수학 용어가 일상 언어에 응용된 것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수학과의 연결 고리는 희미해지고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언어적 표현에는 절대적인 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용어와 표현에 특정한 의미를 담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그 의미로 굳어진다. 어쨌든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수학 용어가 일상 언어로 편입되고 특정한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수학의 의미와 잘 부합되게, 때로는 다소 다른 의미로 자리 잡는 진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일상생활에 침투된 그런 수학 용어들이 사람들의 논리적 사고를 촉진시키고, 나아가 우리사회가 합리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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