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지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이왕이면 경복궁 근정전의 뒤에 있었던 세종 때의 과학 유물들도 되살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 20년 전에 이미 나는 그런 생각을 말했고, 그 생각이 받아들여져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복원 계획을 일부 진행하기도 했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간단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주장했던 ‘세종과학박물관’의 꿈은 아직 그 실현이 요원하기만 하다.
▼과학관 많지만 뿌리찾기 부족 ▼
당시 경회루(慶會樓) 북쪽 언덕에 ‘세종과학박물관’을 만들자고 했던 내 뜻은 다음과 같다. 세종은 수많은 천문기상관계 기구들을 만들었는데, 그 상당수가 바로 경회루 둘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자격루(自擊漏)는 경회루 연못의 남쪽에 보루각을 세워 거기 설치했다. 오늘날 장영실을 그렇게도 유명한 인물로 만든 자격루는 자동으로 움직이며 시각을 저절로 알려주게 장치된 자동(自動) 물시계였다. 그리고 그 동쪽으로는 옥루(玉漏)라는 다른 형태의 천문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장영실의 작품이다.
다시 경회루 연못을 돌아 그 북쪽으로 가면 거기에는 높은 돌대를 만들어 그 위에 천문관측을 위해 간의(簡儀)를 세우고, 바로 옆에는 높이가 10m나 되는 태양고도 관측 장치로 규표(圭表)도 세웠다. 어디 그뿐인가. 다시 그 서쪽에는 혼의(渾儀)와 혼상(渾象)을 설치했다.
이 짧을 수밖에 없는 글에서 이 모든 장치를 소개할 길은 없다. 모두가 천체를 관측하거나 그 움직임을 나타내 주는 장치들이었다. 이 밖에도 잘 알려진 것처럼 세종 때에는 세계 최초로 우량을 재는 측우기를 만들었으며,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비롯한 몇 가지 해시계도 고안해 만들었다. 또 이런 천문학 연구가 열매를 맺어 중국과 아랍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우리 역법의 독립적 완성을 이룩했는데, 그것이 칠정산(七政算)이다.
▼변변한 과학사박물관 하나 없어 ▼
이것만으로도 ‘세종과학박물관’은 정당성을 갖는 것 아닌가. 거기에 농학, 인쇄, 무기, 의약 등의 여러 기술 분야의 성과를 합치면 그야말로 대단한 박물관이 될 만하다.
하지만 그리도 자랑스러운 세종 때의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없는 것이다. ‘세종과학박물관’만 없는 게 아니라, 서양 또는 세계의 과학사를 아우르는 ‘과학사박물관’이 하나도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과학관이 꽤 많은 편이다. 모두 서로 베껴 만들어서 비슷비슷한 것이 흠이긴 하지만 국립과학관은 서울, 대전 대덕, 그리고 새로 세울 과천 등 셋이나 되고, 거의 모든 시도 교육과학원이 역시 과학관을 세워 놓았다. 그렇지만 ‘과학사박물관’은 하나도 없다. 뉴턴이나 다윈, 에디슨이나 노벨에 대해 좀 상세한 전시를 해주는 박물관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조상 숭배에 등한한 한국 과학기술계가 어떻게 밝은 장래를 말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대목이다. 모든 인간 활동에는 뿌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뿌리를 찾을 줄 모르는 우리 과학기술의 장래가 한심스럽다면 지나친 말일까.
우선 경복궁의 경회루 둘레 과학유물을 복원하고 그것들을 ‘세종과학박물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땅 어느 곳에 ‘과학사박물관’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과학 한국의 장래는 훨씬 밝아질 수 있을 듯하다.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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