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금자/첩과 둘째 부인

  • 입력 2003년 11월 23일 18시 46분


일부일처제인 우리 사회에도 첩을 둔 남자가 의외로 많다. 30, 40대도 있다. 첩을 공식화(?)하는 과정은 대개 이렇다. 바람을 피우다 아예 딴살림을 차리고 자식이 태어나면 첩의 호적에 입적한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첩은 아이를 아버지 호적에 올려달라고 한다. 우리 호적제도 하에서 남편은 부인 동의가 없이도 첩 자식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남편은 첩의 호적에서 자신의 호적으로 슬쩍 출생신고를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남편의 이중생활과 사생아의 입적을 부인이 제일 나중에 알게 된다. 시댁 식구들은 대체로 본부인을 홀대한다. 첩의 혼인신고 요구가 시작되면 첩을 둔 남자들은 본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학대한다. 조선시대 얘기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60대 할머니가 찾아왔다. 남편이 20년 전부터 첩과 딴살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첩의 자식을 호적에 본처 자식인 양 동의도 없이 올려놓았고 사실이 알려지자 아예 첩한테 가버렸다. 치매에 걸린 시조부모를 수발하게 하면서 생활비만 조금씩 보내주고는 와보지도 않았다. 최근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면서 집을 팔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첩한테는 집을 사주었지만 본처 앞으로는 명의 이전해 준 재산이 없다.

▷어린 자식 두 명을 둔 30대 젊은 여성도 남편이 딴살림을 차렸고 자식까지 낳아 호적에 몰래 올려놓은 것을 알았다. 시부모를 찾아가 이 사실을 말하자 시어머니 왈, “남자는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거야.” 우리 사회는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뿌리가 깊다. 가부장제 사고방식이 여성들에게도 내면화되어 여성이 여성에 대한 가해자로 등장한다. 이런 사건의 소송에서 남자측 변호사는 첩을 ‘둘째 부인’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일부일처제 국가에서 둘째 부인은 없고, ‘첩’ 또는 ‘상간녀(相姦女)’일 뿐이라고.

▷남편의 축첩을 알고도 참고 사는 여성의 공통된 이유는 경제권이 없고 이혼소송을 해도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가 적으며 자녀양육비도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를 당한 부인들은 소송을 하고 싶어도 법원의 판결 수준에 실망해 참거나, 실망스러운 결과를 감수하면서 소송을 해야 한다. 우리 법원은 위헌 행위인 축첩을 한 남자들에게 관대하다. 법원이 선고하는 위자료 액수도 5000만원 수준을 넘는 경우가 드물어 부인의 억울함은 가중된다. 헌법상 가정제도의 유지를 위해 가부장제 사고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되어야 한다. 축첩 행위는 가정파괴 범죄이며 인권을 짓밟는 범죄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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