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당시 과학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는 전자기파를 발견한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죽기 직전에 출판한 ‘역학의 원리’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헤르츠의 핵심적인 주장을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 ‘논리 철학 논고’에 그대로 적용했다. 그런 비트겐슈타인을 철학으로 이끈 스승이 버트런드 러셀이었는데, 러셀도 수학과 철학을 동시에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항공공학을 전공했던 엔지니어 출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연구는 그가 항공공학을 배우면서 익혔던 체계적 실험의 방법과 비례효과와 같은 개념이 그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과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서는 철학이 과학에 미친 영향이 잘 드러난다. 아인슈타인이 10대 청소년 시절에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에 깊이 심취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뿐 아니라 최근의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창의성의 근원이 독일 철학의 오랜 전통인 ‘자연의 통일성’의 개념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연 현상들 사이에 근원적인 결합과 통일이 존재한다는 철학적 세계관이 그의 과학연구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특허국의 3등 심사관으로 일하던 20대에 그는 특수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브라운운동 등 3편의 기념비적인 논문을 동시에 내놓는다. 이는 빛의 본질이라는 단일 주제에 천착하면서 얻은 통찰력을 ‘자연의 통일성’에 대한 확신에 따라 동시에 다른 세 분야에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자물리학의 정통 해석이라 불리는 코펜하겐 해석을 완성한 덴마크의 과학자 닐스 보어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양자물리학은 ‘상보성 원리’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 이는 보어의 스승이던 덴마크 철학자 해럴드 회프딩과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철학적 심리학적 개념에서 힌트를 얻어 착안한 것이었다. 상보성의 원리는 서로 상반돼 보이는 것 간에 상보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보어는 이를 바탕으로 전자와 같은 미시(微示)존재가 파동이거나 입자이면서도 서로 상보적일 수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보어의 제자였던 독일의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도 과학과 철학이 만났을 때 과학적 개념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지금은 과학과 철학의 거리가 멀기만 하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대학의 과학 교육은 철학을 비롯한 타 학문에 무관심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한 과학자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철학이 과학에 미친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꼭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창의적인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의 더 많은 시간을 전공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많은 과학도가 연구개발만이 아닌 사회의 다른 영역에 자리를 잡고 있고, 상징과 언어로 이뤄진 인문학이 과학의 개념적 발전을 촉진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과학은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효용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봄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철학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느낀다면 징검다리부터라도 놓아 보자.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이 바로 그런 징검다리가 되지 않을까.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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