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쌀의 해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7시 13분


쌀은 탄수화물 외에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밀이 주식(主食)인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가 고기나 야채를 덜 먹어도 건강한 것은 쌀을 주로 먹는 덕분이라고 한다. 쌀은 지방 함유량이 적어 비만과 당뇨를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면적당 인구부양력 면에서도 쌀만큼 우수한 곡물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대부분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쌀의 해’다. 국제적으로 쌀농사의 생산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어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8억 인구를 구해내려면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쌀이 남아돌아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굳이 유엔이 쌀의 해라고 정하지 않았더라도 쌀 문제는 올 한 해 우리나라의 뜨거운 이슈가 될 듯하다.

▷우리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에 서명하면서 쌀 시장 개방을 당분간 미뤄뒀다가 2004년에 재협상을 하기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과 약속했다. 농민은 쌀 시장 개방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여건은 개방이 불가피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우리와 함께 특정 품목의 시장 개방을 유예 받았던 일본(쌀)과 이스라엘(양고기)은 이미 ‘빗장’을 풀었다. 우군(友軍)이 없어진 셈이다. 반면 쌀 수출국인 중국이 WTO에 새로 가입해 공세는 곱절로 세질 전망이다. 미국만도 벅찬 마당에 한국 상품을 가장 많이 사가는 중국마저 협공을 한다면 버텨내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

▷국익을 위해서는 농민도 양보해야 하지만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농민만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쌀 경작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런 기술을 갖고도 비싼 땅값과 인건비 때문에 국제 쌀값보다 몇 배나 비쌀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개방에 따른 농민 피해를 직접 보상해주고 농촌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무역 한국’과 ‘농촌’이 함께 사는 길이다. 올 한 해는 모두가 상생(相生)하는 지혜를 발휘하게 하소서.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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