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동연/'몸짱 전성시대'의 함정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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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 사이에서 회자되는 최고의 문화코드를 꼽으라면 아마 ‘몸’이 아닐까 싶다. 연예인 누드 열풍, 성형미인, 다이어트, 마라톤, 스와핑족과 웰빙족에서 ‘얼짱’ ‘몸짱’ 신드롬에 이르기까지 몸은 후기 소비사회에서 가장 매혹적인 상품이자 즐거운 게임이 됐다. 이제 몸을 소비하고 몸에 말을 거는 행위는 자폐적인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익명의 대중에게 당당하게 도전하고 응수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게임이 된 듯하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얼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 반열에 오르고, 40대 전업주부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몸짱 아줌마’의 몸매가 사람들의 숭배의 기호가 된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여성들에게 얼굴과 몸매는 취업을 위한 최고의 자본이기도 하다. 누드는 연예인들의 돈벌이 수단에 국한되지 않고 젊은 한때의 아름다운 몸매를 간직하고픈 일반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섹시하다는 이효리가 요염한 춤을 추면 시청률이 요동치고, 비와 권상우의 근육질 몸매가 한번 노출되면 여성들의 숨이 멎는다. ‘웰빙족’은 몸에 좋다면 어김없이 뛰고 달리고 먹는다. 가히 몸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대중은 왜 이렇게 몸에 ‘환장’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살 만해졌으니까. 가령 인구통계학적으로 보았을 때 다이어트나 성형수술 붐, 건강 스포츠의 대중화는 소비 주력부대인 중산층의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몸의 과잉소비 현상이 단순히 시대적 보편성만 갖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얼짱문화의 경우 인터넷문화가 만들어낸 일종의 신종 사이버 팬덤(fandom)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몸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경계, 스타와 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하위문화적인 속성을 가진다. 얼짱문화는 디지털문화에 익숙해진 10대들의 자생적인 놀이문화다. 익명의 얼굴은 소통의 매개가 되고, 이 소통 안에서 날것 그대로의 거래와 교환의 게임이 이뤄진다.

그러나 얼짱이나 몸짱과 같은 유행이 아무리 대중의 자생적인 문화라 해도, 과잉된 현상 안에는 분명히 보존과 배제의 법칙이 존재한다. 게임의 장에 참여해 선택된 자들은 예외 없이 얼굴이 잘났거나 몸매가 빼어나야만 한다. 마라톤이란 단순한 운동도 막상 제대로 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몸의 과잉소비나 과잉담론은 개인들의 문화적 취향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얼굴과 몸이 잘나거나 돈이 많아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몸의 문화는 하위문화의 속성인 ‘전복의 법칙’이 지배문화의 속성인 ‘배제의 법칙’과 투쟁하는 장이기도 하다.

비극적인 것은 한국에서 몸의 유행이 천박한 상업 미디어와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공존을 통해 조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에서는 생산적인 몸의 쾌락, 전복, 반금기의 욕망은 사라진 대신 상품형식으로 환원된 기표만이 떠돌고 있다. 또한 여성의 몸에 대한 가부장주의의 집요한 관음증은 몸에 대한 물신숭배를 끝없이 재생산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대의 몸은 엽기발랄한 10대들의 하위문화, 청년세대의 섹슈얼리티의 반란과 세월을 역행하도록 강요받는 중년세대의 강박관념, 전통적 가부장제의 습속, 그리고 미디어 문화자본의 생리를 함께 읽는 시대의 문화코드라 할 법하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문화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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