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몸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다’

  • 입력 2004년 2월 8일 19시 50분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1·2월호에 실린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기고문은 한마디로 조지 W 부시 독트린의 종합해설서라고 할 만하다.

그의 기고문은 ‘부시 독트린을 위한 변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군사적 일방주의와 선제공격론에 대한 해명으로 가득하다.

부시 행정부의 안보전략, 대외정책은 ‘로크주의적 토대(Lockean sensibility)’ 위에 서 있는데도 마치 ‘홉스주의적 의도(Hobbesian intention)’로 똘똘 뭉친 것처럼 폄훼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항변하는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토머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막기 위해 전제국가의 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였다. 같은 시대의 계몽주의 사상가 존 로크는 그런 홉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주권재민의 저항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유일 초강대국의 국무장관답지 않은 고민이 느껴지면서 ‘66세의 걸프전 영웅도 꽤나 답답한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충격과 공포’를 앞세워 이라크를 공격할 때와는 사뭇 다른 논조였다.

‘몸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다(形端影直·형단영직)’고 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제 몸은 돌아보지 않고, 그림자 탓만 하기 일쑤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들도 그랬다. 햇볕정책도 교과서적으로는 강군(强軍)과 북한의 무력도발 불용을 전제로 한 대북화해 협력론이었다. 아니 단순한 수사학적 전제가 아니라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대북 3원칙의 제1조였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대북 퍼주기’ 또는 ‘일방적 당근주의’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고, 정책과 이미지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기만 했다. 국민과의 괴리도 심해졌다. 급기야 서해교전이 발생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사실상의 전쟁이었다.

“아마 우리 병사들은 (햇볕과 전쟁 사이에서) 한순간 헛갈렸을 겁니다.” 서해교전 직후 사석에서 만난 한 장성의 탄식이자 자괴였다.

보름 뒤면 노무현 정부의 출범 1주년이다. 윤영관 장관 경질 파동 끝에 취임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참여정부의 외교 정책에 ‘균형적 실용주의’라는 옷을 입히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지만, 결코 ‘반미 자주외교’가 아니라는 항변일 것이다.

새 옷을 입으면 달라질까.

반 장관의 임명 소식이 발표되던 시간, 기자는 마침 홍순영 전 장관과 얘기 중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외교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는 반 장관을 누구보다 아끼는 ‘옛 보스’였다.

“그냥 이종석을 시켰어야 했다.” 이종석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차장에게 외교부 장관을 맡겼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의외의 말이었지만, 그의 역설적 탄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차장이 외교안보 정책의 ‘몸통’으로 있는 한 반 장관이 아무리 균형적 실용주의를 외쳐도 ‘반미 자주외교’라는 유령의 그림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DJ 정부 시절 그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가 적지 않았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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