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편가르기 진보의 본질 오해 ▼
참여정부 1년은 그런 기간이었다. 그러나 첫 1년을 무사히 보낸 것에 축하를 보낸다. 청와대에서 미래지향적 평가집을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남은 4년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시중의 평가가 청와대의 자체 평가와 조금 다르다는 게 문제다. 각종 여론조사는 참여정부 성적을 낮게는 35점(중앙일보), 높게는 53점(동아일보) 정도로 매겼다. 대체로 ‘중간 수준 이하’라는 얘기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비켜 선 자의 괴로움이 스멀스멀 머리를 쳐든다.
해석은 두 가지다. ‘발전의 걸림돌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치른 필연적 비용’이라는 견해와 ‘소모전을 일삼은 현 정권의 무능력의 결과’라는 견해의 충돌이다. 전자에 동의하면 진보, 후자에 동의하면 보수다. 진보는 개혁 행보의 정당성을 의심치 않고, 보수는 1년 행적에서 정치적 음모나 망국의 술수를 읽어낸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진보에 동의하지만 결코 흔쾌하지 않다. 진보가 매달린 ‘비난의 정치’가 진보의 생명을 자해할 요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매달린 최대 과업, 그래서 상대적으로 높은 평점을 받은 과목이 정치개혁이다. 정경유착에 연루된 사람들의 처벌 규모와 명분으로 봐서 가히 ‘정화(淨化)’라고 할 만하다. 대통령이 마지노선까지 몰려가면서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부패정치를 솎아 세력 교체를 단행한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드물다. 나도 찬성이다. 그러나 뒤집힌 정치판에서 새로 결성된 신세력을 집권세력으로 취하는 정치게임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정치판의 청소’라고 했던가? 섬뜩한 이 말은 ‘희생양의 정치’로 둔갑할지 모르고, 필요에 따라선 스스로가 희생양의 심판대에 올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최대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집권세력이 강조하듯 국민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세력의 재편 과정에 소요되는 막대한 기회비용은 누가 책임지는가? 신세력 창출에 매진했던 지난 1년 동안 국가비전, 발전모델, 합의 정신은 실종되었고 대신 고 실업률, 불안한 치안과 민생이 국민을 괴롭혔다. 인수위 노동분과에 참여했던 모 위원의 지적처럼 노동정책도 실패다. 긍정적 업적도 상당하지만 파괴와 해체를 우선시하는 개혁의 방식과 능력을 초과하는 개혁의 깊이에 나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혁명’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동원정치의 가능성이 마음에 걸린다. 정치는 동원을 필요로 하지만, 공격수의 동원은 수비수의 보복을 불러올 것이다. 진보가 내세운 혁명 목표가 아무리 정당해도 모든 허물을 덮는 것은 아니며 정계개편 이후 민생정치에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리란 보장도 없다. 끊임없이 선을 갈랐던 진보의 방식은 진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막대한 기회비용 누가 책임지나 ▼
그럼에도 진보 이념은 공적 담론을 장악했다. 민주화의 공적에 기대어 진보 이념의 우월성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 시대에 진보 이념은 정당하지만 ‘진보 이념만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호소력 있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려면 시대가 부여한 프리미엄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당성의 자원을 까먹지 말아야 한다. 정당성은 각 영역에서 일궈낸 고른 업적, 이 정권의 수사를 빌리면 ‘균형 업적’에서 나온다. 단호한 사명감으로 진군해온 진보의 방정식이 겨우 중간 이하의 평점을 얻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기를, 그리고 비켜 선 자와 비켜 설 자의 항변을 조금이라도 유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송호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사회학도 hkn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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