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뮤즈와 팜 파탈

  • 입력 2004년 3월 9일 19시 12분


자고로 힘 있고 돈 많은 남자는 많은 여자를 거느린다. ‘영웅은 호색’이라는 말은 그런 능력 있는 남자들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옹호다. 억울해 할 이유는 없다. 미모의 재원(才媛) 또한 많은 남자를 거느릴 수 있다. 여인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남자에게 예술적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Muse·女神)’와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 파탈(Femme Fatale·妖婦)’이다.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의 신비로운 얼굴에는 뮤즈와 팜 파탈이 동시에 내재돼 있다.

▷서양에서는 니체 릴케 프로이트 같은 지성인을 잠 못 이루게 했던 루 살로메,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과 ‘기타의 신(神)’ 에릭 크랩튼의 구애를 받은 모델 패티 보이드를 뮤즈로 꼽는다. 살로메에게는 “그와 사귀는 남자는 아홉 달 안에 불후의 명저를 쓰게 된다”는 얘기가 따라다녔고, 보이드는 두 천재 뮤지션에게서 ‘Something’ ‘Layla’ ‘Wonderful Tonight’ 등 불후의 명곡들을 헌정 받았다. 최근 뉴욕에서 88세를 일기로 영면한 김향안 여사는 불멸의 천재인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반려이자 뮤즈였다.

▷팜 파탈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관능의 화신이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백옥같이 흰 피부, 붉게 젖은 축축한 입술,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상징된다. 성서의 살로메 유디트 델릴라, 클레오파트라와 카르멘, 경국지색(傾國之色)에 해당하는 양귀비 달기 포사 서시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대에는 메릴린 먼로와 마돈나를 꼽을수 있다. 남성들은 이들에게 함락되는 것 외에는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다.

▷뮤즈와 팜 파탈은 영화의 단골 소재다. ‘닥터 지바고’의 줄리 크리스티, ‘글루미 선데이’의 에리카 마로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귀네스 팰트로가 뮤즈 계열이고,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데미지’의 쥘리에트 비노슈,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먼은 팜 파탈 계열이다. 뮤즈와 팜 파탈은 정반대지만 남자들을 애태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여류 명사는 둘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낮에는 뮤즈, 밤에는 팜 파탈같이 살 수 있었으면…” 했다. 명답(名答) 아닌가.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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