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정윤수/K-2리그에서 인생을 배운다

  • 입력 2004년 4월 12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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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시절, 우리는 모두들 이순신 장군과 아인슈타인을 희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봉급쟁이에 서민이라는 이름의 ‘마이너리그’ 소속이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외국 유학까지 갔다 와도 ‘시드(seed) 배정’을 못 받는 판인데 월급날보다 카드결제일이 더 빨리, 더 자주 돌아오는 것만 같은 우리네 인생이 ‘마이너리그’가 아니고 무엇이랴.

오해 마시길. 나는 무슨 푸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리그의 냉혹한 아름다움을 강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이너리그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아마추어는 여가 선용이지만 마이너리그는 프로다. 아마추어의 조깅과 마라토너의 레이스는 차원이 다르다. 비록 하위권이라 해도 마라토너는 프로의 자의식으로 처절한 고독에 맞서 달리는 것이다.

프로의 승부란 숙명이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운명의 시시포스처럼 구르는 바위를 다시 밀고 올라가야만 하는 숙명의 레이스가 프로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삶의 일회적인 엄숙성! 그 앞에서는 누구나 프로다.

문제는 국가대표팀의 엔트리가 정해져 있듯이 인생의 시드 또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들 최고의 선수를 꿈꾸지만 스타는커녕 프로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다름 아닌 K-2리그 이야기다.

K-2라고? 생소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프로축구의 2군 경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지난해에 출범했고 지난 토요일(4월 10일)부터 새 시즌에 돌입했건만 각계의 ‘아낌없는’ 무관심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감히 권하건대 주말 나들이는 축구장으로, 그것도 K-2리그 경기장으로 향하기를 나는 바란다. 한국 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장차 1부 리그 하위팀과 2부 리그 상위팀이 서로 자리를 맞바꾸는 진정한 프로축구를 실현하려면 K-2리그가 활성화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유만으로 권하는 것은 아니다.

확언하건대 K-2리그에는 인생이 있다. 물론 그들은 마이너리그다. 그러나 아마추어는 아니다. 한때는 다들 국가대표를 꿈꾸었던 기대주였으나 좁디좁은 프로의 관문과 부상과 슬럼프 때문에 마이너리그에서 뛸 뿐이다.

K-2리그에는 초대 가수도 없고 카드섹션도 없다. 오로지 숙명의 축구공과 냉혹한 휘슬만이 기다린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그러나 어쩌랴, 운명의 휘슬이 방금 울리지 않았는가. 선수들은 수준급의 실력과 팽팽한 근육으로 승부에 몰입한다. 굴러오는 공은 차야만 하고 육체의 에너지는 모조리 소진해야만 한다. 종료 휘슬이 텅 빈 경기장에 공허하게 울려 퍼질 때까지 뛰고 또 뛰는 마이너리그 선수들.

폭우라도 내리면 K-2리그의 경기장은 그야말로 격렬하면서도 숙연한 인생의 축소판이 된다. 비록 관중석은 텅 비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을 던지는 선수들. 홀로 세상의 운명에 맞선 시시포스처럼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진흙탕을 뒹구는 저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K-2리그 선수들.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세상의 공전과 자기 인생의 자전이 불일치하여 마이너리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K-2리그의 현장으로 가자. 그곳에 인생이 있다. 세상의 힘에 맞서는 ‘운명의 힘’이 있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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