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날을 맞는 마음이 그리 편치 않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기초과학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과학을 통해 조국 독립을 꿈꿨던 선각자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고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뿌리가 부실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듯 기초과학이 허약한 국가가 부강한 국가로 발돋움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 수출 공산품의 핵심 부품들은 막대한 외화를 들여 수입한 것들이다. 항간에는 “선진국의 기초과학 분야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으니 북유럽 국가들처럼 몇 개의 선도적 응용과학 분야만 집중 육성하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구 면에서 북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크다. 남북한을 합치면 7000만의 대국이다.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많다. 남한 인구 4700만명만 놓고 봐도,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지향한다면 연간 총생산량으로 무려 1조4100만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몇몇 선도 분야만의 육성으로 도저히 이룩될 수 없는 규모다. 우리와 같은 인구 대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균형 있게 육성해야 할 당위성이 바로 여기 있다.
그런가 하면 젊은 연구인력들이 기초과학 분야에 계속 지원할 수 있도록 국민에게 과학을 적극 홍보하는 일이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도 없다. 과학이 국가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며 과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일을 하는 과학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최근 ‘과학동아’와 함께 ‘한국 자연사 10대 사건’을 선정해 발표했다.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사명감을 갖고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물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데에 잔잔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과학 대중화의 성패는 학계 연구기관 산업계 대중매체 사회단체가 역할분담을 하고 얼마나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선 과학자들의 이런 활동을 공식 업무로 보는 시각이 절실하다. 또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합리적인 제도, 행정 및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
과학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과학정책은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과학연구의 결실이 바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몇 년 혹은 몇 십 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수 주기가 긴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연구 성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지원이 축소되거나 중단되면 그만큼 한국의 과학 발전은 지체될 뿐이다. 과학한국의 수레바퀴가 자발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초일류의 선진부국을 실현하기 위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균형 육성’과 ‘과학 대중화’라는 보험료를 지불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 국민의 몫이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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