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安사건’의 메시지▼
중국 현대사의 큰 줄기를 바꾼 ‘시안사건’이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음에도 합의문은 없었다. 장제스는 구두약속을 주장했고 저우언라이도 서명을 강요하지 않았다. 장제스가 떠난 후 마오쩌둥이 성명을 냈다. “장제스씨의 말에 찬양할 만한 구절이 있으니,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구절이다.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신용을 지키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이중 기행평전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김영사). 장제스는 약속을 지켰다.
역사 풍토 성정이 다른, 외국 이야기 하기가 썩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17대 총선 후 최대화두인 상생정치에 시안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칩거 중 띄운 말이 상생과 통합의 정치였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그 뜻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수없이 외쳐댔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상생정치가 어렵다니 무슨 까닭인가. 주된 이유는 말로만 상생정치를 했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생 환경을 만들어 낼 능력도 없었고, 상생의 룰을 지킬 의사도 없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제 집권세력에 진지한 마음을 주문하고 싶다.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보여 준 정치행태의 문제점이 경박함 아닌가. 구호만 외치고, 깃발만 흔들어서는 상생정치의 실현이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바란다.
상생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이좋을 때가 아니다. 사이가 나쁘고, 긴장관계일 때 상생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법이다. 문제는 서로 다름을 강조한 나머지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 있다. 이제 다시 상대방을 반의회 세력으로, 의회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버리면 상생정치는 발을 붙일 수 없다. ‘시민혁명’이란 것이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무너뜨리는 데 큰 몫을 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로 하여금 위기감을 갖게 해서는 상생의 공감이 일어날 수 없다. 결국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상생의 기본조건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한 포용력에서 남이 넘볼 수 없는 강한 자신감도 쌓인다. 시안사건은 중국인의 ‘전략적 사고’ 능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독점이 아니라 공유▼
국가적 명제를 독점할 때도 상생정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철권을 휘두를 때 내세운 것이 애국심이다. 애국심의 독점으로 모든 불법을 덮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개혁, 민족, 민주를 독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중선동정치도 이런 독점욕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상대방은 반개혁, 반민족, 반민주세력이란 말인가. 자기만이 옳다는 우월감은 상생을 죽인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수를 확보한 제1당이라고는 하지만 여야로 구별하면 152 대 147로 불과 5석 차이고, 정당득표율에서는 우리당 38.3%, 한나라당 35.8%였다. 우월감이 아니라 겸손함을 일깨우고, 독점이 아니라 공유를 강조하는 민의 아닌가. 이것이 상생정치의 룰이다. 열린우리당 정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회담에서도 ‘상생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왜 상생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항상 자문해 보라. 이번엔 말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를 집권세력이 더 잘 알 것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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