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홍규덕/‘갈등조정’ 전문교육 필요하다

  • 입력 2004년 6월 3일 19시 14분


개혁 성향의 정치신인들로 물갈이됐다는 17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됐다. 정치판 자체가 크게 달라진 데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모두가 화합과 상생을 강조하고 있어 이제는 상호 갈등과 비방으로 얼룩졌던 과거 정치의 병폐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과연 17대 국회는 그동안 누적된 정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국민은 갈등으로 점철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 무기력한 국회와 당리당략에 눈먼 정치인들의 개혁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매도하며 대거 ‘신인’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정치에 내재된 문제의 근원은 놔둔 채 문제의 결과인 일부 정치인들만 단죄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17대 국회도 갈등과 혼란의 원인은 여전히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갈등 해소는 권력 쟁취와는 또 다른 기술의 영역이며 그만큼 전문적인 투자와 교육이 필요한 분야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한 극심한 대결과 갈등은 단기간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이며, 따라서 쉽게 치유되기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갈등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과 해결을 위한 훈련이 절실하다. 또 이를 위한 전문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혐오시설 건립이 논의될 때마다 극심한 님비(NIMBY)현상이 빚어지고, 때로 유혈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원전수거물처리센터 사업 유치 청원이 마감되자 유치 청원한 11개 지역에서는 벌써 찬반 양론이 나뉘어 갈등 양상을 보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한 미군 재배치와 관련한 평택지역의 토지수용 문제는 단순히 내정 차원이 아니라 한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외교 사안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갈등 조정에 대한 성숙한 접근이 더욱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갈등이 우리보다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진사회가 우리보다 나은 점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다양한 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고도로 전문화된 협상대표들과 외교관, 학자들도 ‘예방 차원’에서 중재 역할을 위한 훈련을 받는 것이 상례다. 미국의 각급 학교에는 갈등 조정을 위한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회로 나오기 전부터 갈등 조정을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가 대통령비서실에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신설한 것은 갈등 조정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늦었지만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성숙한 사회는 노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의 골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누적되어 온 구조적 모순의 반영이다. 따라서 그 해결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과 전문적인 훈련 및 교육, 그리고 많은 투자가 따라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오늘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량 있는 시민사회단체들도 합당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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