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성주/과학기술은 ‘미래의 主食’

  • 입력 2004년 7월 18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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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국가의 과학기술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국이 배워야 할 모델로 한국을 들었다. 과거 영국병에 시달리다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과감한 민영화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직접투자를 줄인 영국으로서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지원을 강조한 것은 놀라운 방향 선회다.

▼국가의 과감한 직접투자 필요▼

현대 과학기술의 메카인 영국이 우리나라에서 배우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 세포를 추출한 황우석, 문신용 교수팀의 연구 업적이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에도 큰 충격을 준 것 같고 반도체나 광대역 통신망 정보기술(IT)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특허등록 증가율 등도 그 원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표방하고 국가 과학기술 체계를 정비하며 국가 예산의 5% 이상을 투자하는 등 한국의 적극적인 과학기술 진흥 노력이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았나 싶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근세기 세계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다. 한 국가의 흥망이나 직업의 부침도 과학기술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에어컨과 엘리베이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고층빌딩 숲의 성공적인 국가 모델인 싱가포르는 아직 말라카 해협의 한적한 어촌이었을지 모르며, TV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현대인의 우상인 스타 연예인들도 유랑악극단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21세기에 들어와 세계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한 큰 이유 중 하나는 과학기술의 정체다. 많은 국가가 미래에 ‘먹고살 산업’ 걱정을 하게 된 것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안락한 자동차, 좀 더 선명한 TV, 좀 더 빠른 컴퓨터를 만들고 있으나 산업의 지도를 뒤바꿀 정도의 획기적인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기술의 정체는 1997년 존 호간이 ‘과학의 종말’에서 주장했듯 이론적 발전의 한계로 인해 수확 체감의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발전의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정체의 이유는 냉전체제 종식 후 선진국들이 국가의 기초과학 투자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과학기술 투자 축소를 대신해 온 민간 기업의 투자는 항상 제한적이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단기 수익 성과를 노린다. 우리나라 기업같이 최고경영자(CEO)의 임기가 짧은 기업일수록 단기적 성향이 더 강하며 평균 수명이 30년도 못 되는 기업들로서 그 이상의 장기 투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과학기술의 새로운 분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바이오나 나노, 융합 기술들은 장기적인 노력과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요하며 동시에 높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제시되는 장밋빛 꿈들을 현실화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이러한 첨단 분야에 기업이 투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다.

과학기술에서 또다시 획기적인 혁신과 발명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세계경제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오일 가격에 의해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는데도 대체에너지 실용화는 아직 요원하고,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에도 속수무책이며, 테러리스트들의 핵과 세균에 의한 위협에도 무기력한 상황이다. 환경, 보건, 식량, 안전, 에너지 등 21세기의 핵심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과학기술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투자의 효율성 높이는 노력을▼

우리나라같이 과학기술 투자의 상대적 비율이 높으나 절대적인 액수가 적은 국가에서는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한 나라의 장기적인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한편, 세계적 난제를 함께 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과감한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자조(自助)철학 대처리즘의 화신인 브라운조차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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