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가진 고민의 방향은 거의 같다. 어떻게 문화관광도시를 만드느냐. 시장 규모가 작고 제조업 기반이 빈약한 도시에서는 문화관광도시 이외의 대안도 별로 없다. 가장 손쉬운 것은 농수산물 축제다. 그러나 1차산업 생산물의 축제로는 경제적인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잘 된다고 하면 덩달아 하는 풍속도도 생겼다. 꽃 축제, 도자기 축제가 전국에 넘쳐난다.
▼희화되는 전통문화 재현▼
역사도시에서는 기와집을 새로 짓고 민속촌을 만들겠다고 한다. 문제는 거짓말이다.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더니 역사도시의 곳곳이 사극의 배경세트로 변해가고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등장하는 것은 수문장이 아니고 배우들이다. 턱에 붙인 것은 가짜 수염이다. 춤추는 가수들처럼 머리에 마이크를 두른 채 호령하는 재현행사 배우들 모습 뒤로 보이는 도시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런 교대의식이 남겨주는 것은 기념사진의 알록달록한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얄팍한 쇼의 나라, 돈을 위해서는 왕궁의 역사까지 희화화하는 나라의 이미지를 덤으로 얹어준다.
조선시대를 넘어 삼국시대의 수문장 교대 쇼를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도시까지 생겼다. 한쪽에서는 화랑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이견이 많은데 수문장 교대의 고증에 충실하다고 자신한다.
영국 버킹엄의 근위병 교대의식이 의미 있는 것은 여왕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근위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궁궐에는 임금님이 없다.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려면 우리는 청와대 앞에서 해야 한다. 배우가 아닌 실제 수문장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성의 수문장 교대도 대통령궁 앞에서 한다.
그러나 청와대에 가면 수문장은 진짜여도 건물이 가짜다. 건물로서의 청와대는 기와를 얹기는 했으나 콘크리트로 된 가짜 기와집이다. 세종로에서 보이는 대표 건물들인 광화문, 청와대가 모두 콘크리트 기와집일 만큼 이 나라의 도시에서는 복제, 모조품이 횡행하고 있다.
전국 곳곳을 휘젓고 있는 콘크리트 기와집, 장인의식을 발휘해 콘크리트로 만든 나무 모양 벤치, 배우들이 눈치껏 움직이는 민속촌. 모두 우리 도시의 모습들이다.
이렇게 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구하는 것은 관광객들이 남기고 가는 돈이다. 그 돈도 들여다보자. 영조의 어진(御眞·임금의 화상이나 사진)은 남아 있어도 세종대왕의 어진은 남아있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도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짜로 초상화를 만들고 한국은행 총재가 도장 찍은 화폐에 넣어 유통시킨다.
화폐에 위인의 얼굴이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유로화에는 인물이 아니고 건물이 들어 있다. 화폐 통용의 근간은 신뢰도에 있다. 달러화에는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믿는다고 자신 있게 쓰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화폐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믿을 수 없는 것들로 채우고 있다.
가짜, 거짓말, 사기, 유사품, 위조, 짝퉁. 학교는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담 밖의 사회는 거리낌 없이 이런 것들로 채워 나간다. 이런 사회로 세상의 문화적 중심에 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도시가 살 방향은 모방과 재현에 있지 않다. 창조에 있다.
▼열매 거두려면 창조의 노력을▼
꾸준한 노력으로 곳곳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변변한 공원 하나 없던 동네, 경기 부천이 지금 국제적인 독립영화제의 메카가 되었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기량으로 서울의 내로라하는 교향악단을 위협하고 있다. 경남 통영은 이제 굴, 미역을 따서 파는 도시에서 세계 수준의 음악제 도시로 바뀌고 있다.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에 기대 빛산업단지를 만들어 도시를 바꾸겠다고 한다.
작은 단서들을 크게 일궈낸 성과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창조의 열매는 커지고 모방의 결과는 사그라질 것이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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