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딱 한 뿌리 캐서 먹었는데 하필 그것이 150년이나 된 비싼 산삼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무’ 먹듯이 단숨에 먹어버렸어요.”
나는 그 남자의 증언을 들으며 박장대소했다.
세상에! 아까운 산삼! 산삼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150년 된 신비, 빛나는 가치를 완전히 무시당하고 고작 ‘무’처럼 채소 취급을 당하다니! 나는 산삼이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아내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당신, 횡재했네. 참 잘했어!” 이렇게 칭찬해줬을까? “당신, 제정신이야? 내가 못 살아, 못 산다고!” 이렇게 부부싸움을 했을까?
TV에서 산삼사건을 보다가 나는 몇 년 전 일이 오버랩되며 생각났다.
▼내 주변 사람들이 ‘심봤다’ 외쳐야 할 ‘산삼’이 아닌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스님이 산삼을 몇 뿌리 캐셨다. 친구에게 맛이나 보라며 산삼을 신문지에 돌돌 싸서 선물했다. 그는 스님과 한잔 술에 기분 좋은 저녁을 먹고 밤늦게야 귀가해 잠든 아내 옆에서 함께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난 남자는 산삼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부랴부랴 출근을 서둘렀다. 청소하려던 아내가 신문지를 펴보니 도라지가 한 뿌리 톡! 떨어지는 게 아닌가? 남편이 설마? 산삼 같은 것을 가져올 턱이 없기에 아내는 도라지라고 단정하고 용감무쌍하게 고추장을 찍어 먹어버렸다! 그 이야기를 우리 모임에 나와서 말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까르르~ 뒤집어졌다.
“세상에!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래도 그렇지, 산삼하고 도라지도 구별 못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비웃음을 종합세트로 묶어서 마음껏 해주었다. 웃는 것으로 말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 역시 갖가지 포즈로 비웃어주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아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잖아? 내가 저 사람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그렇다. 나는 보통 땐 짱구가 ‘어리버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10년에 한 번쯤은 정확히 ‘조준’할 때가 있다.
산삼 같은 친구들, 산삼 같은 아이들, 산삼 같은 남편을 도라지인 줄 알고 고추장 찍어 먹은 적은 없었던가? 도라지 취급은커녕 심지어 동해바다의 ‘멸치’인 줄 알고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버린 적은 없었던가?
나는 케이블 TV에서 6개월 정도 MC를 본 적이 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대담프로였다. 한번은 서울 양천구에 있는 대안학교 성지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출연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조폭 두목이 학교에 입학했다.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등교하고 소주 한 병을 꼭 꿰차고 와서 마셨다. 어느 누구도 ‘찍’ 소리 하지 못했다. 아침이면 교문에 서서 동생뻘 되는 학생들에게 90도 각도로 절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학생들이 항의하고 교사들은 그를 퇴학시키기로 결정했다. 보고를 받은 교장선생님은 그를 교장실로 불렀다.
“자네, 왜 그러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게!”
야단도 심하게 치지 않았는데 그는 발로 탁자를 차면서 소리쳤다.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이야? 그래도 교장은 포기하지 않고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그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표창장도 주었다. ‘위 학생은 앞으로 선행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표창장을 수여함.’
상장만 주면 찢어버릴 것 같아서 근사한 패널까지 해서 주었다고 한다. 상장의 효과가 있었는지 전과 13범인 조폭 두목은 점점 달라지더니 자격증 3개를 따고 전문대에 입학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분이야말로 도라지도 아닌 잡초를 보고 심봤다! 소리 친 것은 아닐까? 그러자 잡초가 도라지로, 도라지가 더덕으로, 더덕이 산삼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물론 흙 속의 잡초를 보고 천년만년 심봤다! 소리 쳐봐야 잡초는 잡초일 뿐이다.
우주에 살고 있는 생물 중에서 왜 인간만 위대하다고 하겠는가? 그것은 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삼의 해프닝에서 다시 한번 몇 년 전의 추억을 되돌려 보면서 내 주변의 산삼들을 챙겨본다.
날마다 심봤다! 하고 소리 칠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최윤희 카피라이터 <주간동아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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