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을 통치한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가미카제’로 미국 군함에 뛰어들 정도로 무모했던 일본인들의 극렬한 저항이었다. 천황제를 존치키로 한 것도 국민 여론 무마를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하루아침에 ‘순한 양(羊)’으로 변신해 미군정(美軍政)을 받아들였다. 미군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한 일본 ‘직업여성’들 또한 조국을 위한 복수를 도모하지 않았고, 사회도 그들을 ‘양공주(洋公主)’로 대하지 않았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미국인들은 ‘룰(Rule)’을 중요시한다. 다양한 인종과 역사적 전통이 조화를 이뤄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合意)’다. 이는 서부 개척시대 총잡이들의 결투문화에 잘 투영돼 있다. 권총을 들고 등을 마주 댄 뒤 다섯 걸음 또는 열 걸음을 걸어간 뒤 돌아서서 승부를 가리는 전통이다. 먼저 뒤돌아서서 총을 쏘는 반칙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들이 상대방의 등에 총을 쏘려 하자 결투를 지켜보던 악당 아버지가 자식을 먼저 쏴 죽이는 영화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재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존 케리 상원의원이 전화를 해 ‘진정으로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며 국민 통합을 호소했다. 케리 또한 “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이 정해야지 지루한 법적 소송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이제 ‘치유를 위한 시간’이 왔다”고 선언했다. 승자보다 패자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미국의 민주적 전통과 저력을 확인시켜 준 감동의 정치적 이벤트다. 한국인의 오기 탓일까? 당사자도 받아들인 미대선 패배를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치다. 승복은 결코 항복이 아닌데….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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