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최원식]‘용사마 열풍’ 이면엔…

  • 입력 2004년 11월 28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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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다 갔다. 끝이란 으레 사람을 감상적(感傷的)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요즘은 일기마저 불순하여 더욱 그렇다. 세찬 비가 내렸다가 금세 맑은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눈발이 뒤섞인다. 기상청에서는 엘니뇨현상으로 설명하지만 세상사가 뒤숭숭하니 하늘도 그 건건(健健)한 운행을 잠시 잊었는가,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이 정부의 행로가 카터형(型)으로 갈지, 아니면 클린턴형으로 나아갈지, 빗대는 논의를 경청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카터나 클린턴이나 모두 ‘촌놈’이다. 모든 면에서 소수자인 시골 출신 개혁파들이 ‘세계의 중심’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 두꺼운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셀 것은 뻔한 일이었다. 과연 두 정부 모두 출범 당시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한국 때리기’에 대한 속죄?▼

카터는 결국 4년 내내 고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함으로써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속에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는 퇴임 후에 오히려 존경받고 있다. 분쟁지역을 쫓아다니며 화해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한 모범이 되었다.

예컨대 1994년 북한을 방문하여 자칫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북핵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푼 것은 대표적이다. 그때 정작 우리들 대부분은 그 위기가 그리 심각한 줄은 까맣게 몰랐다. 나중에 알고야 아찔했으니, 한국은, 아니 한반도 전체가 정말 카터에게 감사해야 한다. 2002년 그에게 노벨 평화상이 헌정되었다. 정치적으로 오염되기 일쑤인 노벨 평화상을 구원했다는 논평이 나올 만큼 퇴임 후의 활동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재임 때의 실패는 실패대로 남는 것이 역사의 엄정함이다.

그에 반해 클린턴은 1년 만에 좌충우돌과 우왕좌왕을 끝내고 ‘계몽된 국제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주의의 협화 속에 미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클린턴의 위력이 여전히 막강한 것을 보면 그 역시 지지받는 전 대통령의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재임 때의 업적이 추문을 덮어버릴 정도로 평가받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클린턴의 성공을 통합적 중도주의의 승리로 설명한다. 민주당 좌파의 위치에서 중도로 이동하여 보수적 공화당과 민주당 좌파 사이에 균형을 취한 클린턴의 정치적 선택이 빛나는 대목이다.

참여정부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 이미 집권 2년을 앞두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클린턴 정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이 착잡한 때 일본에 부는 배용준 바람은 일견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최근 그의 일본방문 보도를 접하면서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교수의 지적이 떠올랐다. 지난 번 ‘한일, 연대21’ 회의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그는 일본 안의 ‘북한 때리기’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 말에 나는 그것이 내면으로는 ‘한국 때리기’라는 분석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역시 동의한다고 하면서, 일본의 한류(韓流)가 일본 남성들의 북한(또는 한국) 때리기에 대한 일종의 속죄적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韓日새시대 여는 힘 될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과도한 해석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기운다. 일본 아줌마들의 저 저돌적인 몸짓들은 일본 사회, 더 좁히면 일본 남성사회에 대한 격렬한 항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전도(顚倒)된 항의가 일본 사회를 개혁하는 힘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오히려 일본 남성들의 한반도 때리기를 가속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조지 W 부시의 재선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이 엄중해지는 현실에서 참여정부의 성숙한 대응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형국이라는 점을 함께 새기고 싶다. 참여정부가 중립에 제대로 설 때 일본의 한류도 한일의 새 시대를 여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 터인데, 카터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자.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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