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임진모]가요시상식은 가요계 주도로

진작부터 얘기가 나왔어야 했다. 가요계는 연말 가요시상식이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으면서도 관례와 타성에 젖어 방송사나 신문사에 폐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불참 선언이나 사석의 이의 제기에 그쳤을 뿐이다. 이번에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가 연말 가요시상식의 발전적 해체를 요구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지상파 방송, 유선방송, 스포츠신문 등 언론사 주관으로 연말에 열리는 가요시상식은 무려 10개가 넘는다. 각기 특성이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연말 가요시상식은 그게 그것이라고 할 만큼 엇비슷하다. 이 때문에 스타가수는 해마다 12월이면 이곳저곳 시상식에 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지난해 ‘이효리 논란’이 말해 주듯 한 가수가 여러 시상식을 석권하는 사례가 잦은 것도 따지고 보면 개성 부재의 시상식이 가져온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매체 주도 시상식은 그 성격상 ‘대중적 인기’가 주요 잣대일 수밖에 없다. 인기가 중요하지, 가수의 음악성이나 미래성은 뒷전이다. 과잉 상업성을 피해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진지한 음악가나 인디 밴드들은 연말에 일시적 폐업상태를 맞는다. ‘연말 가요시상식에는 권위와 비전이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지난해 MBC 가수왕이 된 이수영이 “이효리와 나를 포함해 지난해 가수왕이 될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격을 갖춘 가수가 없으면 그냥 안 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한 것은 솔직한 고백이다.

매체 주도의 시상식은 매체의 자사 중심적, 편의적 선택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 아무리 보완장치를 마련해도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가령 KBS 프로그램에 유달리 많이 출연한 톱가수를 MBC나 SBS가 연말 시상에서 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이번 일로 매체 주최의 시상식이 지닌 본질적 위험을 따져봤으면 한다. 음악은 음악계가 힘을 가져야 하지, 중간 역할을 하는 매체가 파워를 행사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가요계는 전파와 인쇄매체에 중력이 치우쳐 있다. 가수는 TV에 출연하지 못하고, 스포츠신문에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홍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우리 가요스타는 TV 스타’라는 자조도 나돈다. 근래 인기가수들이 가요계 불황을 이유로 잇달아 드라마 연기자로 변신해 성공한 사례도 이런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연말 시상식은 과거에 비해 파괴력이 현저하게 줄었다지만 ‘매체의 가요계 지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는 건재하다. 이는 아직도 국내 음악계가 미디어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연말 가요시상식은 당연히 음악계의 주도로 치러져야 한다. 그래미상처럼 별도의 음악법인이나 평론가협회와 같은 순수 음악모임이 주체로 나서야 공정성이나 시상 후 잡음의 염려가 없다. 연제협의 연말 가요대상 해체 성명은 오랜 과제인 매체로부터의 독립을 향한 의지의 시발이라는 점에서 기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구가 너무 늦게 나온 탓에 올해는 매체 시상식이 그대로 열릴 것이라 한다. 연초에는 방송 3사 시상식을 통합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가요계는 뭘 하나 해도 왜 그리 더딘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미루면 관습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워진다.

임진모 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