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5000만 달러, 8000만 달러를 수출하던 60년대 초 수출병정은 광원, 농부, 어부들이었다. 당시 한국은행 입행시험은 한국의 5대 수출상품을 물었는데 쌀, 텅스텐, 철광석, 생사, 한천(寒天) 따위가 정답이었을 것이다. 70년대 들어 가발, 신발, 방직공장 여직공들이 이들을 대체했다.
▷원양어업도 한몫을 했다. 일본 정부는 5년 넘은 어선의 용선(傭船)만을 허용했으므로 우리 기업은 노후한 배를 빌리면서 그 어획물 판매도 일본선주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당시의 일본인은 왜소해서 배의 침대는 160cm가 넘지 않았다. 그래서 체구가 작은 어부만 뽑혀 긴 세월 더럽고 지겹고 고달픈 선상생활을 하다가 운 나쁘면 풍랑에 휩쓸려 황천객이 됐다. 아프리카 서해안의 똑똑하고 건강한 우리 원양기지장은 사양길의 일본 원양회사가 파견한 반 푼의 약시(弱視) 직원으로부터 늘 감시를 받았다. 그는 끼니때마다 이 상전을 집으로 모셨고 빨래와 온갖 시중을 들었다.
▷금년 수출은 2500억 달러가 넘을 것 같다. 과거의 무역 첨병들은 이제 다 사라지거나 쓸데없는 존재가 됐고, 앞으로의 수출은 최첨단 시설과 고급두뇌들이 담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똑똑해졌지만 과거 그 시대의 지도력, 화합력과 극기정신은 없다.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수출터전을 얻는 일보다 거리를 점령한 농민, 스크린쿼터에 매달리는 영화인을 더 생각하는 때가 된 것이다.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