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이 1947년 말에 발표한 소논문 ‘나의 소원’에 나오는 글이다. 일제에 맞서 테러를 마다하지 않았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민족주의자가 피력한 생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 세계관과 진보적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57년 전이 아니라 오늘 얘기해도 백번 지당하고 현실성 있는 말이다. 또한 백범은 자신이 원하는 국가상으로 문화의 힘을 갖춘 국가, 그래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그런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중견 국가에서 민주 강국으로▼
2004년을 마감하면서 백범의 문화국가론을 새삼스럽게 되새기는 데는 2005년과 그 이후 중장기적인 국가전략에 대한 고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장래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가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그 전제가 틀리면 아무리 빛나는 아이디어도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규모, 군사력, 민주화의 정도, 기술, 교육수준 등에 비춰 볼 때 이미 중견 국가에 해당된다. 절대 약소국이 아니다. 중견국을 선진 민주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교역 규모를 자랑하는 개방형 통상국가다.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통해 역내 시장통합을 앞당기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통상국가로 발전해 나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핵문제를 위시해 분단 문제로 아직도 안보 위협이 있고 평화라는 차원에서 크게 미흡하다. 평화국가가 되기 위해 국론을 모으고 국제사회 환경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한 과제다. 현 정부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자고 주장하는 배경의 한 축도 바로 이런 평화국가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한국이 선진 민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길은 각종 내부 혁신 노력과 더불어 글로벌 통상국가로서 수출 5000억 달러 시대 개막을 위해 박차를 가하면서 평화국가의 기초를 닦는 데 있다. 금년에 수출 2000억 달러를 돌파했으니 5000억 달러 시대를 열자는 주문은 헛되지 않다. 더불어 6자회담을 성공시키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평화국가의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한다. 2005년이 갖는 풍부한 역사적 상징성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활용해야 한다.
필자는 통상국가, 평화국가에다 문화국가 비전을 첨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상국가는 물건 팔아 돈 벌면 최고라는 자국 이기주의, 평화국가는 안보지상주의 등의 인식을 줄 수 있다. 이 모두를 문화로 결부시키는 포괄적 인식이 필요하다. 백범 같은 선각자가 국가철학으로 제시했을뿐더러 우리 헌법에도 문화국가의 이념이 흐르고 있다. 문화(관광)부를 두고 있는 정부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이미 문화의 힘에 관심을 쏟아 온 것이다.
▼‘韓流현상’의 힘▼
그런 결과의 하나로 ‘한류(韓流) 현상’을 꼽을 수 있다. 한류의 경제적 이득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문화 교류와 소통을 통해 상호인식의 격차 해소와 상대에 대한 불신의 극복 위에 정체감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현상에 접근할 필요도 있다. 백범이 소박하게 정의 내린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 주는’ 문화의 힘을 우리가 키워 나갈 때 통상과 외교도 잘된다.
21세기 진정한 강국은 소프트웨어 강국이다. 프랑스를 부러워하고 선진 민주국가 모델로 삼는 것은 프랑스가 지닌 문화적 힘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프랑스같이 문화 강국이 돼야 한다. 한국 사회 전반의 창발력을 높이는 분위기 조성이 곧 문화력을 높이는 길이다. 통상, 평화, 문화가 어우러질 때 선진 민주 강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이수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 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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