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씨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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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와의 인터뷰 다음 날인 1월 5일 지진해일 재난 구호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난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현지의 여진으로 자카르타 공항에서 이틀 동안 발이 묶인 뒤 가까스로 피해지역인 메단에 도착했다고 국제전화로 알려왔다. 이종승 기자
본보와의 인터뷰 다음 날인 1월 5일 지진해일 재난 구호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난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현지의 여진으로 자카르타 공항에서 이틀 동안 발이 묶인 뒤 가까스로 피해지역인 메단에 도착했다고 국제전화로 알려왔다. 이종승 기자
《“와아, 신난다. ‘겨울연가’ 봤대요.” 4일 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한국지부 사무실에 갑자기 한비야 긴급구호팀장(45)의 환호성이 울린다. 5일 아침 남아시아 지진해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로 구호 활동을 떠나기에 앞서 현지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던 다른 직원들로부터 박수가 터졌다. “재난 지역에 가면서 태평하게 웬 TV 드라마 얘기냐”고 물으려는 순간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거든요.”》

그는 스리랑카의 최대 지진해일 피해지역인 동남부 바티칼로아 지역에서 긴급구호물자 배분 등의 활동을 하고 3일 귀국한 참이었다. 그곳에서 1주일 머무는 동안 그는 ‘피해자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라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더군요. 울고불고 난리치는 것보다 넋 나간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삶의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얼굴이니까요.”

대재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다. 극한 상황을 겪은 뒤 우울증 등 심리적 장애를 치유하는 것은 외상을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동류의식을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 TV에서 ‘겨울연가’가 방송됐고, 현지 관계자가 그것을 봤다는 소식이 그에게 커다란 힘으로 다가온 것은 그 때문이다.

“엄청난 재난을 겪은 주민들에게 한국 드라마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지만 그들과 의사소통하는 데에 실낱같은 끈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당신들과 함께 있다’는 위로를 전하는 데 한류 열풍이 도움이 된다면 십분 활용해야죠.”

그는 지진해일 사태가 터지자마자 옷가지 몇 벌만 챙겨서 지난해 12월 28일 스리랑카로 날아갔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누비며 웬만한 참상에는 익숙해진 그에게조차 지진해일의 현장은 끔찍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체를 찾는 수색견만 피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머문 해안마을에서만 650여 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외상을 입은 사망자는 생각보다 적었다. 진흙 섞인 바닷물을 너무 많이 들이켜 익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희생자도 빈민이 단연 많지만, 서둘러 마련된 이재민촌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민들로 가득했다.

“현장을 둘러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빈민들이 위험에 가장 가깝게 노출돼 있기 때문입니다. 해안가에 움막 짓고 고기잡이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해일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해안을 벗어나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거의 피해를 보지 않은 중산층 주택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글픈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스리랑카에 도착한 첫날부터 각국의 구호지원 소식이 밀려들었다. 영국 민간단체 6000만 파운드, 일본 5억 달러, 미국 3억5000만 달러 등 피해가 컸던 만큼 각국의 지원 규모도 기대 이상이었다. 지원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현지에 모여든 국제 구호단체 회원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한국 정부가 6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지원 규모에 따라 위로의 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경제 규모에 한참 못 미치는 지원금을 내놓은 것이 안타까웠다. 괜히 다른 나라 구호단체 회원들로부터 ‘눈총’ 받는 게 아닌지 주눅들 정도였다. 그러더니 며칠 사이 한국의 지원 규모가 200만 달러, 500만 달러, 5000만 달러로 점점 커졌다. 규모가 늘어난 것은 기뻤지만 그 모양새가 좋지 않아 개운치 않았다. 그는 “남을 돕는 것도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정부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대외 지원금은 그 사회의 공감대와 여론을 바탕으로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은 질릴 정도로 ‘세계화’라는 단어를 들었지만 아직은 ‘나라 밖 세상’에 관심을 가질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고, 그 중요성에 대한 확신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와 ‘남’을 구분하고, ‘우리’ 안에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한국식 휴머니즘의 자화상이 이번에 드러났다고 할까. 4년 전 ‘긴급구호 활동가’로 나서기 전엔 ‘오지여행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수십 개 나라를 돌면서 한국인의 ‘우리’ 지향적 멘탈리티가 얼마나 강한지 체험했다고 한다.

지진해일 직후 스리랑카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을 떠날 때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한국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푸껫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건네더란다. 하지만 태국 푸껫은 전반적인 피해 규모가 인도네시아나 스리랑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곳. 그는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국인들은 구호지원에서조차 ‘우리’부터 챙기려는 의식이 너무 강한 게 아닌가 생각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세계화’의 필요성을 교육받았지만 ‘세계 경제인’이 되는 데 치중하느라 ‘세계 시민’이 되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세계 시민이 되는 것은 권리 못지않게 의무가 따르는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세계화에 동참한다는 것은 먹기 싫은 것도 꾹 참고 먹어야 하는 학교 급식과 비슷합니다. 맛있는 것만 골라먹을 수 있는 뷔페 식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한국의 ‘국민’을 넘어 ‘세계인’으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밤늦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월드비전 사무실 전화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대부분 “현지에 가서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자원봉사 지원자들이었다.

이들에게 한 팀장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지금은 대재난의 1단계에 해당하는 시기로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아마추어 봉사자들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는 “건물 복구와 청소 등이 본격 시작되는 한 달 후 정도부터 자원봉사 인력 파견이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인터넷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확 달아올랐다가 꺼져버리는 한국인의습성이 걱정되는 듯했다.

남을 돕는 이유는 뭘까. 그는 이런 질문을 수없이 자신에게 던졌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도 비슷하다. “재미있는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남을 돕겠다고 위험한 지역을 찾아다니느냐”는 것이다. 그의 구호 지원 활동을 ‘쇼맨십’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봉사활동가들처럼 그 역시 이 질문에 딱히 근사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남을 돕는 것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한다’고 그는 믿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지난 1주일을 통틀어 10시간만 자는 강행군을 하고도 피곤한 줄 모른 채 또다시 인도네시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독립군’입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기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쌓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게 더 편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쌓으며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며 도움을 주고받는 ‘연합군’의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한비야씨는▼

△1958년 서울 출생

△홍익대 영문학과 졸업

△미국 유타대 언론대학원 졸업

△1990∼92년 홍보회사 버슨마스텔라 한국지사 근무

△1993∼99년 세계 오지 여행. 책 ‘바람 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출간

△2001년∼현재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한국지부 긴급구호팀장

△2004년 한국YWCA 선정 ‘젊은 지도자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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