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여자와 살떨리는 안심스테이크-약백이<4>

  • 입력 2005년 1월 8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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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32살의 자칭 노총각 우수한(가명)씨는 지난 6년간 맞선을 모두 100번 가량 봤다. 이 가운데 2번은 퇴짜를 놓고 나머지는 모두 퇴짜를 맞았단다. 100번이나 맞선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는 맞선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 4회째 글을 내보내며 앞으로 12회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마음에 없는 여자, 그리고 비싼 식사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4>부자연스런 성형수술

"소개시킨 분 얼굴봐서 최선 다하는데 너무 비싸"

글 연재를 시작하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어 보는 질문이 있다.

“그 얘기 진짜야? 구라 아냐? 아님 여러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 쓴 거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 나를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 내가 연재하고 있는 내용들은 다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이다. 내 글 빨이 약해서 그렇지 당시 상황들은 더 처참했다. 그렇다. 남들 한번 겪기도 힘든 그런 일들은 나는 지금까지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일명 축구공 인생(여기저거 차이고만 다니는 축구공과 같은 인생).

소개팅을 하다보면 불문율처럼 당연시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모든 비용은 남자가 부담한다. 또 만나는 장소도 커피숍 내지 레스토랑이다. 이거 무지 안 좋은 현상이다.

피했으면 하는 여자를 맞선 상대자로 볼 때 심정은 정말 머피의 법칙 이상이었다.

한번은 지금 대전 둔산동에 위치한 사학연금회관 20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소개팅을 했다.

토요일 오후 5시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거기 손님 대부분이 나처럼 소개팅 내지는 맞선을 보는 듯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양가 부모님을 대동하고 나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는 것이다.

70~80년대 연속극에나 등장할 법한 상황이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도 부모님 모시고 나와서 맞선 보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사실. 솔직히 조금은 부러웠다.

각설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번 이야기는 서두에 언급한 소개팅 비용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을 하나 써볼까 한다.

2001년 무더운 여름 토요일 오후 6시.

지인의 소개로 학원 강사를 하는 아가씨를 유성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항상 그렇지만 소개팅에 나가기까지의 기대감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설렘과 기대감....기타 등등...오만 잡생각...ㅋㅋㅋ

하여간,,, 약속시간 보다 5분정도 늦게 커피숍에 갔다. 그런데 유성호텔 커피숍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1층 로비 한구석에 아무 칸막이도 없이 입구를 만들어 놓아 호텔 로비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커피숍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장소 조금 부담스럽다. 로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것 같고, 또 혹시나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괜히 이상한 소문 돌고 무지 안 좋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커피숍에 들어섰고 창가에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분인가 보다’

그리고 씩씩하게 그 녀의 앞에 섰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나 솔직히 성형 미인 안 좋아한다. 요즘 웬만한 여성들 점 빼고 쌍꺼풀 수술하고 어지간하면 한두번 얼굴에 칼을 댄다지만 나는 싫다. 왜 싫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냥 싫다고 대답한다. 왜? 내 마음이니까.

그녀는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자연스럽지가 않고 굉장히 부담스러워 보였다. 개그맨 박명수가 방송에서 자주 얘기하는 야매로 한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소개 시켜 준 분 얼굴을 봐서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지.

웨이터가 왔다.

“뭘 드시겠어요.”

“예, 전 딸기주스요.”

나도 얼떨결에 메뉴판도 안보고

“예. 저도 딸기주스 주세요.”

참 지루한 시간이었다. 일단 얼굴에 칼을 댄 것도 맘에 안 들었고 또 하나 목소리가 박경림 목소리는 아주 저리가라였다. 목소리에 가래 끓는 소리가 나는 것이 참 같이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창밖에 굉장히 낯익은 무리들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친구와 후배들 5~6명이 떼를 지어 볼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친구와 후배들과 매주 주말이면 유성호텔 볼링장에서 게임을 즐기던 때였다.

갑자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거 소문 다 나게 생겼네. 어떡하지 일단 고개를 돌리자.’

나는 부자연스런 동작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들과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나는 그녀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얘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 막 내 앞을 스쳐 지나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냐?”

“어. 볼링장인데. 넌 어디야? 연락두 안되구 너두 올래?”

“아니, 나 잠깐 일이 있어서 그래, 알았어 이따 연락할게”

안심이다. 일단 나를 못 본 모양이다. 얼른 여기를 떠나는 게 상책이다.

나는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가 남은 과일주스를 한숨에 들이키며 그녀에게 말했다.

“식사하러 나가시죠. 뭐 먹으러 갈까요?”

솔직히 이렇게 물어보면서 그녀가

‘아니요. 됐어요. 늦었는데 그냥 집에 가죠.’

이렇게 얘기해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으로 그쳤다.

“처음 봤는데 다른 것 먹기는 그렇고 양식 먹으러 가지요”

처음 보면 양식 먹어야 된다는 것 이때 처음 알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가며 양식을 먹자니,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서로 서먹서먹하니 무난하게 양식으로 하자는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 해주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주스 값을 계산하면서 놀라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음료수 한잔이 무려 9천원이 넘었다. 밥을 먹은 것도 아니고 주스에다 무슨 쇠고기를 갈아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딸기 몇 개 넣고 갈아 만든 주스가 한잔에 9천원이 넘는다니 이건 완전히 칼만 안 들었지 도둑놈들이었다.

쓰린 속을 달래며 호텔에서 나와 인근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호텔에서처럼 메뉴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메뉴판을 밀면서 물었다.

“뭐 드실 건지 고르시죠.”

“아니요. 전 먹는 거 있어요. 여기요, 안심스테이크 주세요.”

헉... 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말로 만 듣던 안심스테이크를 먹는단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소개팅 했지만 안심스테이크를 시키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것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한순간 주저함도 없이 저렇게 당당하게 시키는 사람은 처음 본다.

내가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 비프스테이크는 먹어봤어도 TV에서나 들어보던 안심스테이크를 내 앞에서 보게 되다니...

여자가 안심스테이크를 먹는다는데 나는 뭘 먹어야 되나. 당연히 나도 그에 준하는 걸 먹어 줘야하지 않겠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안심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돈이다. 도대체 안심스테이크가 얼마나 하는지를 알아야 계산이 될 것 아닌가. 당시만 하더라도 카드를 쓰지 않을 때여서 현금 없으면 아주 망신을 톡톡히 당할 참이었다. 난 궁금했다. 말로만 듣던 안심스테이크가 얼마나 하는지. 내 지갑속의 돈과 한번 맞춰봐야 했다.

참고로 나는 그날 7만원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이미 호텔에서 주스 값으로 1만8천원을 썼기 때문에 남은 돈은 5만 2천원. 안심스테이크가 2만5천원이 넘으면 나는 돈을 빌리러 나가야 될 판이었다. 일단 가격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우선 메뉴판을 살며시 펼쳐 스테이크 가격을 봤다. 하늘이 나를 돕는지 2만5천원이었다.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더 비싼 걸 시켰으면 아주 개망신을 당했을 텐데...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혹 내가 지갑속의 돈을 잘못 계산했다면 큰 낭패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생리적 현상이 급해서가 아니라 지갑속의 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돈을 세는데 내 신세가 왜 이리 처량한지 정말 그 때의 심정은 어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참한 기분이었다.

이후 그녀와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난 오로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그녀. 음식가격이 비싸고 싸고를 떠나 기본적인 상호간의 예의가 없는 여자였다.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스테이크의 맛이 어땠는지, 식사를 하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단지 비싼 걸 먹었고 돈이 모자라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는 것.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화장실에 지갑 속의 돈을 헤아리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이때의 심적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금전적으로 기분 좋게 쓴 돈이 아니었고, 또 예상 지출액보다 상당히 많은 양이 지출이 되었다는 안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의 소개팅 원칙하나.

소개팅 약속은 될 수 있으면 식사 때를 피해서 정해라. 오후 3시쯤으로 정한다면 간단한 음료수로 만남을 이룰 수 있다. 그럴 경우 소개받은 사람이 마음에 들면 시간을 끌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필수요 저녁은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짜고짜 비싼 음식을 시키는 이성은 소개팅의 목적보다는 하루 잘 때운다는 생각으로 나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남이 계속 이뤄지기는 상당히 힘들다. 과감하게 정리해라.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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