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32살의 자칭 노총각 우수한(가명)씨는 지난 6년간 맞선을 모두 100번 가량 봤다. 이 가운데 2번은 퇴짜를 놓고 나머지는 모두 퇴짜를 맞았단다. 100번이나 맞선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는 맞선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 5회째 글을 내보내며 앞으로 12회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
다가갔던 그 여자, 그리고 돌아섬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5>카운셀링의 잘못된 충고를 듣고 서두른 탓에 멀어져 버린 가능성 있었던 여자
새해가 되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차를 바꿨다. 10년 동안 정들었던 나의 애마를 과감하게 처분하고 조금 큰 차를 구입했다. 물론 경제적인 사정으로 중고차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핸드폰.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플립 핸드폰을 최신 핸드폰으로 교체했다. 주변에서 선배나 후배 할 것 없이 전부 나에게 이런 소리들을 했다.
“너는(혹은 형은) 여자 사귀려면 우선 차하고 핸드폰 먼저 바꿔”
그러면 항상 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남녀가 만나면 사람 됨됨이를 봐야지, 차하고 핸드폰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정말 속물근성 아닌가요. 경제적 여건이나 보는 그런 여자면 내가 싫어요.”라고 강한 어조로 얘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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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었던 아가씨와의 만남은 사전 도상연습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부담감으로 결국 실패로 이어져 아쉬움을 주었다.(디트NEWS24 제공) |
하지만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속물근성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차와 핸드폰을 바꾸고 말았다. 자, 나에게 차와 핸드폰 바꾸라고 했던 분들... 이제부터 긴장하세야 할 겁니다. 이제 저는 당신들이 바꾸라는 대로 다 바꿨으니 당신들 주변의 괜찮은 여자들 소개 시켜줄 일만 남았네요. ㅋㅋㅋ
글이 연재돼 많은 독자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100번 정도 선을 봐서 한명도 못 사귀었으면 성격에 문제 있는 게 아냐. 정신 감정을 받아 봐야 하는 사람이구만. 대인관계에 문제 많은 사람이겠지”이라고 말 하는 분들 많다는 거 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누누이 얘기 하지만 소개팅은 주변사람들이 해주는 거다. 그럼 100명 정도의 사람을 소개 받을 수 있는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면 내가 과연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모임을 많이 한다. 또래 모임보다는 나보다 다 연륜이 있는 분들과의 모임이 많다. 그리고 소개팅도 친구나 후배들이 해준 것은 전체 20%도 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인간성에 문제 있는 놈, 욕먹으려고 자기 주변의 아가씨들을(친구 딸, 직장후배, 기타 등등) 소개 시켜 주겠는가.
나 그렇게 막 되 먹은 놈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물론 전에도 얘기했듯이 외모적으로는 그렇게 썩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봐 줄만은 하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얘기는 주변의 잘못된 카운슬링으로 잘될 뻔한 인연을 놓친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 해볼까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11월로 기억된다. 내가 상사로 모시고 있던 분의 친구 중에 약사분이 계셨다. 그래서 가끔 시간 날 때면 직장상사와 친구 분이 운영하는 약국에 놀러 가곤 했다. 그럴 때면 평소에 나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는’ 상사분께서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 약사, 어디 괜찮은 아가씨 있으면 우리 우수한이 소개 좀 시켜줘. 참 괜찮은 남잔데 여자들이 못 알아보네.”
그러면 정 약사님은 “그래, 우수한씨 아직 사귀는 사람 없어? 어디 한번 알아봐야 되겠네.”
아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대화를 나누곤 하셨다.
이렇게 나의 상사가 약사님에게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약사협회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보라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이렇게 약속 잡아주시면 나는 뭐 감사할 따름이고, 또 그날을 위해 피부 관리와 인터넷 유머 검색을 하는 등 발 빠른 행보로 약속날짜까지 알찬시간을 보냈다.
약속 당일.
약속장소에는 정 약사님의 동료 여 약사님께서 직접 나와 사전지식을 주입시켰다.
“오늘 나오는 아가씨 우수한씨하고 나이차이도 별로 안 나고 한 5년 정도 봐 왔는데 아가씨가 참 착해. 한번 잘해봐”
응원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아가씨가 약속장소에 들어오자 간단하게 양쪽 소개를 해주시고 약속이 있다고 하시며 자리를 피해주셨다.
아가씨와 단둘이 된 시간. 뭐 소개팅 자리면 으레 하는 호구조사를 실시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약속시간이 저녁 식사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저녁을 극구 사양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크게 생각이 없다는 이유였다.
또, 의심 많은 독자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 있을 거다.
‘맘에 안 드니까 그렇지. 밥도 먹기도 싫었나 보다’
그런 기대를 깨서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말은 진심 이었고 수요일 만나 같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까지 잡았다.
이건 정말 꿈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여자와 영화를 보러 간다니 잠이 안왔다. 그리고 월요일 전화 통화를 했다.
“영화 어디로 보러 갈까요?”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미연씨는 주로 어디로 가서 보세요?”
“저는 동생하고 주로 롯데시네마로 다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그쪽으로 가죠. 사실 CGV가 회사 바로 앞인데 롯데시네마도 괜찮아요. 제가 상영프로 알아보고 내일 다시 전화 드릴께요”
다음날 업무를 마치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저 우수한입니다. 무슨 영화 보실래요?”
“‘광복절특사’를 제가 예매 했어요. 내일 7시 프로예요”
“아 그러세요. 저한테 미리 말씀하지죠. 그럼 제가 해놨을 텐데”
“괜찮아요. 할인카드가 있어서 그걸로 그냥 했어요. 그리고 장소는 CGV예요. 우수한씨 사무실에서 가깝다고 해서 그리로 예매 했어요. 저야 아무 곳이나 상관없거든요”
나 솔직히 이 전화 받고 감동 먹었다. 생각을 해봐라. 상대방 생각해서 평소에 다니지도 않던 영화관에 자기돈 내서 영화까지 예매 해놓고. 정말 행복에 겨웠다.
다음날 약속장소에 나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할 것을 권했다.
“뭐 좋아하세요. 영화는 미연씨가 보여주시니까 밥은 제가 맛있는 것으로 사드릴께요”
“음, 그냥 간단하게 백반 먹어요. 저 그런 거 좋아하거든요”
감동의 연속이다. 솔직히 전 편에서도 얘기 했지만 여자들 대부분 밥 먹자고 하면 자기들이 돈 안낸다고 평소에 잘 가지도 않던 레스토랑으로 가서 스테이크 시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뭔가 틀렸다. 사치라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가 없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철철 넘쳐 흘렀다.
‘이 여자다. 이런 사려 깊은 여자를 사귀어야 돼’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를 처음 만난 것이다. 둘의 저녁 식사 값은 8천원. 4편에서처럼 수만원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때보다 100배 아니 1000배는 맛있게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광복절 특사’를 아주 재미있게 봤다. 솔직히 뭔 영화인들 안 재미있었겠나. 하지만 좀 아쉬운 것은 영화를 보고 났더니 시간이 너무 늦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토요일 만날 것을 약속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렇게 검소하고 마음씨 예쁜 아가씨를 만난 것이 나에게 주어진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다리를 놔 주었던 상사도 농담으로
“수한아 나 양복 맞추러 가도 되냐? 잘됐네, 겨울 양복도 없는데 하나 맞춰주는 거냐?”
“아, 양복 한 벌이 문젭니까. 제가 두벌 맞춰 드릴께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와 다시 만나기로 한 전날인 금요일. 이날이 나와 그녀의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하나의 조언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그것도 우장추(우수한 장가보내기 추진위원회)회장님의 조언이 지대한 공헌을 할 줄이야.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분들이 있다. 이분들이 나를 어여삐 여기셔서 우장추를 결성하셨다. 금요일 그분들을 볼 기회가 있어 당연히 소개팅을 한 일과 그동안의 진행상황을 말씀 드렸다. 연륜도 있으시고 사회생활도 많이 하셨고 특히 여자분들 이었기에 뭔가 도움말을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 였다.
“그래, 그렇게 진행됐단 말이지. 그렇담 그 여자도 수한씨한테 마음 있는 건데. 그럼 내일 만나면 무조건 손잡아 버려. 여자도 은근히 바라고 있을 거야. 나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내숭은 안떨거야”
“그래도 손잡기엔 좀 그런데...”
“괜찮아. 수한씨가 그렇게 소극적이니까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이번에 꼭 손잡아. 그럼 여자 태도도 바꿜거야. 걱정하지 말고 잡아”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동시에 손잡아 한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셨다.
고민이 됐다. 정말 이걸 잡아야 돼 말아야 돼.
잡는다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잡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고민으로 밤을 새다 시피는 안했지만 걱정을 하며 약속 장소로 나갔다. 토요일 오후에 만나 대전인근의 문의 민속촌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날이 약간 추웠다.
‘음, 기회다. 날이 추운 걸 이용해야겠군’
“날이 좀 춥네요”
“네, 그냥 괜찮은데요”
나는 손잡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언제 여자 손을 잡아 봤어야 자연스럽게 잡지. 이건 추운날씨에 땀이 뻘뻘나며 말까지 더듬고 내가 생각해도 어색 그 자체였다.
“추우면 손 줘 봐요. 제가 따뜻하게 해 드릴께요”
“아니요. 괜찮아요. 별로 안 춰요”
그저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하게 흘렀다.
‘아. 그냥 내 방식대로 할 걸. 괜히 어설프게 손잡으려고 했다가 분위기만 망쳤잖아’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몸이 안 좋다면서 집에 가자고 했다. 그녀를 집에다 바래다주고 집에 와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그녀에게서 한통의 메일이 왔다. 그 메일의 내용은 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만나기가 꺼려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아, 정말 아쉬웠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부담스럽다는데 안 부담스럽게 해준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전화할 용기도 없었다.
나는 우장추회장님을 만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여사님 말씀대로 했다가 여자한테 차였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에이, 우수한씨가 잘못했네. 손을 잡더라도 좀 자연스럽게 잡아야지. 그렇게 어색하게 잡으려고 하면 당연히 여자가 싫어하지. 그리고 그 여자도 좀 이상하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아가씨가 뭘 빼. 잘됐어. 다음에 더 좋은 여자 만날 거야 잊어”
아... 가슴 아픈 발뺌이다.
시킬 땐 언제시구... 후회막급이다.
이것으로 그녀와의 만남은 끝났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있던 그녀. 주변의 말에 현혹되어 내 주관대로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만남이었다.
그리고 2004년 12월 그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방문했다. 아직도 남자친구가 없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참 묘했다. 홈피에 있는 그녀의 사진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만났던 여자가 이 여자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긴 2년 전에 3번 만난 것이 전부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기억나건 안 나건 나는 약간의 기대를 하면서 그녀의 홈피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나를 기억하느냐구. 직장 옮겼다. 가끔 들리겠다 뭐 이런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몇 일후 그녀의 홈피를 다시 방문해 보니 답 글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아주 형식적으로 보이는 답 글을 달아 놓았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요즘도 가끔 그녀의 홈피를 방문한다. 물론 전처럼 방명록에 글을 남기지는 않지만...
오늘의 연애 수칙하나.
소개팅을 나가거나 데이트를 나가기 전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한다. 여자들이 뭘 해주면 좋아하고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고.... 뭐 이런 얘기들을 물어본다. 하지만, 이거 잘 물어봐야한다. 특히, 한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것이 보편적인 여성의 성향으로 알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무척 크다. 카운슬링을 받기위해서는 최소한 서너명의 의견을 들어보고 상대방의 성격과 취향을 생각해서 취사선택해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관을 가지고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여성을 상대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좋을 듯싶다.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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