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대실]발효산업이 대체에너지 만든다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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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석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사회의 역동성과 풍요는 석유에너지와 석유화학산업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석유는 차량과 난방의 연료일 뿐 아니라 중화학산업의 원료이기 때문에 배럴당 50달러가 넘으면 국가 기간산업의 존립이 위협받게 된다. 석유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석유가격의 추이에 가슴을 졸이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전통산업’으로 인식되는 발효산업의 기술이 에너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우리의 연구수준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화학회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석유 대신 천연생물자원(바이오매스·biomass)을 산업의 원료로 간주하고 이를 확보하고 가공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세계 화학산업의 중심축이 석유에서 바이오매스로 옮겨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이오매스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 놓은 탄소에너지원으로 지구상에 끝없이 널려 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음식이나 의약품을 개발해 왔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미생물이다. 바이오매스를 먹은 미생물이 ‘자체 가공’을 통해 인간에게 유용한 대사산물을 배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김치나 알코올이 이 같은 ‘발효’ 작용 덕분에 만들어진 음식이다.

바로 이런 미생물의 발효 기능을 이용해 열이나 연료 등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연구가 활발한 것이다. 이 에너지는 화석연료와 달리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바이오매스를 섭취한 후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이미 상당히 많이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통 미생물보다 에너지 생산 능력이 수백 배 뛰어난 미생물이 발견됐다고 하자. 이 미생물에서 특정 유전자를 뽑아내 일반 미생물에 주입하면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슈퍼 미생물’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아예 미생물에서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효소)을 찾아 구조를 알아낸 뒤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효소공학도 주요한 연구의 흐름이다. 최근 미국 에너지부는 극한 환경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 바이오매스를 활용하는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생물 내의 어떤 효소가 화산지대나 남극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견디게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 효소를 찾아내기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안정되게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 발효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지금까지는 조미료나 항생제와 같은 식품소재나 의약제제 등을 생산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발효산업과 중화학산업으로 단련된 전문 인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각 분야에 흩어져 있는 전문 인력을 모아 ‘대체에너지 개발’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시키면 된다. 물론 국가 차원의 정책제시가 이뤄져야 실현이 가능한 일이다.

또 바이오매스를 얻기 위해서는 방대한 경지면적이 요구된다. 지금부터라도 석유유전을 탐사하는 심정으로 국가가 나서서 국내외에 산재한 유휴농지를 찾아 바이오매스를 확보할 수 있는 항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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