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병식]미술은행, 국민편에서 생각해야

  • 입력 2005년 1월 3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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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미술은행(art bank)’ 제도는 국가가 미술품을 구입해 싼값에 대여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그간 예산 부족으로 작품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공공기관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허덕이는 미술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제도는 국고 25억 원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공공기관에 임대함으로써 일반인의 미술 작품 감상 기회를 늘리는 한편 작가들과 미술 시장의 흐름을 지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추구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공모와 추천, 현장 구입 제도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작가와 미술시장을 동시에 지원하는 효과를 거두고 질적인 우수성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이견도 적지 않다. 즉, 작가는 열악한 창작 여건에 대한 지원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화랑은 유통 구조의 확립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신진 작가 지원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전업 작가는 자기들의 어려운 현실에 비춰 청년 작가 지원만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미술은행이란 이름에 걸맞게 작품을 담보로 한 융자도 가능케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지방 작가들의 소외, 집행 과정의 철저한 준비 등도 지적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이 제도의 시행 목적은 ‘국민 문화 향수권 신장’이라는 대전제에 있다. 건전한 미술시장의 육성 지원이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어느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것이냐는 문제 이전에 국민을 위한 문화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감안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이고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도 상당 부분 필요하겠지만 국민 정서와 기호도를 반영하는 작품이 다양하게 소장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작품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둘째, 합리적 대화와 조율을 위한 토론 과정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안을 내더라도 제각기 주관적인 발언만 반복한다면 한계가 있다. 지금쯤은 미술계도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고 경영 전문가들을 배출하면서, 작가나 화상들도 열린 시각으로 관련 행정 시스템 정도는 정확히 이해하려는 거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언제까지나 ‘순수의 시대’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전격적으로 시행되는 미술은행 제도는 아직 시작 단계이고 점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올해 25억 원의 예산으로 300여 점의 작품을 구입한다고 해도 임대 수량이나 미술계의 요구를 다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영국이 GAC(Government Art Collection) 등 4개 기관에 2만여 점, 프랑스 7만여 점, 캐나다 1만8000여 점, 호주 9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현황과 비교하면 아직 초기 단계일 뿐이다. 지원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미술계도 각 단체나 작가들이 제각기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는 충분한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은다면 이 제도를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국내뿐 아니라 재외 공관 등에도 많은 작품을 전시해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이는 과감한 정책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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