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7)두번째 만남까지는 '성공'
여자 어머니와의 우연치 않았던 상견례, 변수로 작용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넌 여자의 심리를 너무 몰라. 연애를 하려면 적당히 밀고 당기는 그런 기술이 있어야지 이쪽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하면 여자 쪽에서 전부 도망가게 되어있어.”
솔직히 그랬다. 나 여자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소개팅을 몇 번 실패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연애의 기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지금도 내 방 한구석에 있는 책장에는 ‘남녀심리학’, ‘멋진 만남, 멋진 연애’, ‘연애의 기술’ 뭐 이런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책 내용은 대부분 첫 소개팅에서는 여자를 창을 등지고 앉게 하고 음식은 고기를 먹고 뭐 만나는 시간은 언제쯤으로 하라는 등 의학적 사실에 근거를 해 세세한 내용까지 나온다. 책에 나오는 내용 다 실천해 봤지만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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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하는 친구 한 놈은 이런 책들에 나오는 중요부분을 체크해 별도로 요약집을 만들어 실천했지만 그놈도 별 소득을 못 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나도 그 요약집을 빌려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실천했지만 반응은 영 아니 올시다다. 자... 괜한데 시간 낭비, 돈 낭비 하지 말자. 남녀 관계는 정말 둘 밖에는 모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자 그럼 이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나는 소개팅을 백번 가까이 했지만 3번 이상 만난 여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는 얘기를 이미 2편에서 밝힌바 있다. 그래서 오늘은 큰맘 먹고 3번 이상 나를 만났던 몇 안 되는 귀중하면서도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 해볼까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6월. 더위가 서서히 시작될 무렵이었다. 전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상사로 모시고 있던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우수한씨 결혼 안 해?”
“해야죠. 어디 좋은 여자 있음 소개 좀 해 주세요.”
“진짜로 없어. 요즘 아가씨들이 눈이 삐었구먼. 우수한씨처럼 괜찮은 사람을 못 알아보고 말이야.”
나는 그냥 웃고 더 이상 이을 말이 없었다. 물론 속으로는 ‘맞아요. 여자들이 전부 눈이 삐었지. 겉만 번지르르 한 놈들에 혹 가서 저처럼 속이 알찬 놈을 못 알아보니 말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많이 듣던 말이었기에 나는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본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수한씨 나야”
“예. 어쩐 일이세요?”
“어. 내가 잘 아는 분 딸이 있는데 한번 만나 볼래?”
어이구, 뭘 그걸 물어 보세요. 얼른 약속 시간하고 장소만 잡아 주시면 되지.
“예. 그렇게 하죠.”
“그래, 아가씨 나이는 28이고 직업은 간호사야. 고등학교 나와 간호학원 졸업한뒤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아마 간호조무사인 듯했다. 간호사는 대학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해야 되는 직업 아닌가. 어른들이야 병원 다니면 다 똑같은 의사이고 간호사로 알고 있나보다. 하지만 직업이 무슨 상관인가. 사람 만 좋으면 되지. 아니 내가 곧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예. 한번 만나보죠”
“어, 그래 한번 만나봐. 아가씨가 무척 예뻐”
헉...예쁘다고. 예쁘면 나야 고맙지만 너무 예쁘면 솔직히 부담되는데...
“예. 고맙습니다. 나중에 약속시간하고 장소 정해서 연락주세요”
그리고 몇 일후 드디어 약소장소로 향했다. 그날의 약속은 저녁 7시 30분에 그녀가 일하는 병원 근처에 있는 지하상가 안경점 앞에서 보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퇴근시간이 7시 30분이었기 때문에 그녀 편의를 생각해서 내가 그렇게 정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10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검정 옷을 입고 나온다고 했지. 아직 안나왔겠지’
주변을 한번 휙 하고 둘러보는데 완전 검정색은 아니지만 검정계통의 옷을 입은 아가씨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여잔가? 무지 예쁘다고 했는데 그냥 평범한데, 아닌가? 가서 물어볼까. 아냐, 좀 기다려 보자 30분되면 물어봐야지’
유심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데 그녀는 지하상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안경점으로 들어가 안경을 맞추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구나. 괜히 물어봤으면 망신당할 뻔 했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 쪽의 계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나는 분명히 보고 말았다. 검은 원피스에 커다란 눈, 하얀 피부.
‘아~~! 저 여잔가?’
그녀도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내 앞으로 다가 왔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 졌다.
‘예쁘다더니 저 정도 일 줄이야. 천지신명님 아니... 자리를 주선해주신 김 국장님 고맙습니다.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혼자 지낸 모양이다. 드디어 그동안 여자친구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낸 보상을 받는 구나’
정말 그 때의 내 심정은 이랬다. 지금까지 숱한 여자들을 소개 받았지만 외모 상으로는 내 이상형과 가장 흡사한 그런 여성이었다. 전에도 밝혔지만 나는 여자 외모 그렇게 많이 안 본다. 그냥 남들보다 예쁘면 좋고, 돈도 많았으면 좋겠고, 성격도 좋으면 좋겠고, 키도 컸으면 고맙겠지만 여자 외모는 딱 두 가지만 본다.
남들은 이상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눈썹과 치아 정렬 상태를 본다. 왜 그걸 보는지 나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눈썹과 치아가 가지런한 사람이 그냥 좋았다. 친구들한테도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 놈들이 한마디 툭 던진다.
“변태...”
변태라도 할 수 없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내 맘에만 들면 된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흘렀다. 다시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저 혹시 박신혜씨 되세요?”
“네”
가슴이 몽둥이질 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도 드디어 꽃이 피는 구나.
아가씨는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도 무척 차분해 보였다. 맏딸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기품이 있어 보였다. 이렇게 첫날 만남은 가까운 전원카페에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첫 만남에서 나눴던 대화 중에 뭐 특별한 기억은 없다. 워낙 첫인상이 강해 그 잔상이 오래 가서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대화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 그녀와 헤어지려니 뭔가를 괜히 주고 싶었다.
‘뭐 그녀에게 선물 할 것이 없을까?’
차안을 두리번거리던 중 마침 뒷자리에 시집이 한권 눈에 띄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항상 차안에는 몇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닌다. 시집 멋지지 않은가? 첫 만남에서 시집한권의 선물이라... 지금생각해도 그때 그 타이밍은 절묘했던 것 같다.
설렘과 환희로 가득했던 첫 만남은 그렇게 마감됐다. 다음날 소개 시켜준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수한씨 어제 아가씨 어땠어?”
“예, 고맙습니다. 어제 잘 만났어요. 또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어, 그래. 잘해 봐. 내가 박신혜씨 어머니에게 우수한씨 집안 얘기며 부모님 얘기, 우수한씨 얘기 했더니 무척 좋아 하시더라구. 신혜씨도 우수한씨 괜찮다고 한데, 신혜씨 어머니는 올 가을이라도 우수한씨만 좋다고 하면 결혼 시킨데, 나 옷 맞추러 가도돼?”
너무 급하게 나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 좋다는 데야 뭐 고맙지. 그녀의 퇴근 시간이 평일, 주말 저녁 7시 30분. 또, 한달에 한번 일요일에도 당직을 서야 한다며 시간 내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시간을 못 낸다면 내가 내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첫 만남을 가졌던 주말 퇴근시간에 맞춰 그녀의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납치하듯 데이트를 즐겼다. 식사를 맛나게 하고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중국 등’ 축제가 있다고 해 그곳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초만원이었다. 볼만하다는 입소문이 꽤 나서인지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입장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특히 노인들이 단체로 구경을 와서인지 더 붐볐다.
괜히 사람 잃어 먹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현장분위기가 나에게는 더 없는 기회로 느껴졌다.
‘기회는 찬스다. 이번엔 실패하지 말아야지’
지난 5편에서 여자 손 억지로 잡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거울삼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아니 좀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의도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런 기회 아니면 내가 언제 여자 손 한번 잡아보겠는가. 여자와 손잡고 극장구경 가보는 소박한 꿈 하나 지금까지 못 이루고 있는 놈의 대단한 용기였다.
그녀도 싫은 반응은 아니었다. 그때 현장 상황은 정말 손을 잡지 않고서는 일행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기에 별 거부감 없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손.
‘아, 이래서 연애 하는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다니나보구나’
나는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이유를 그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화려한 등 구경을 마치고 중국기예단의 서커스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둘은 서커스를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당시 시간이 10시 30분.
하지만 서커스가 끝나려면 밤 11시. 그녀의 집이 문화동이니까 서커스를 다 구경하고 집에 데려다 주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너무 늦었는데 이거 다 보면 너무 늦을 것 같네요. 아쉽지만 이제 들어가시죠.”
아... 내가 생각해도 참 멋진 멘트다. 지킬 건 지킨다. 그렇게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혜씨를 소개 시켜 주셨던 분한테 전화가 왔다.
“우수한씨, 신혜씨 어머니가 우수한씨 좀 보자는데”
“예. 왜요?”
“어. 어머니가 우수한씨에 대해 궁금하다고 한번 보자고 하시네. 부담 갖지 말고 식사나 한 끼 하지”
아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요? 부담이 안갈 수가 있나. 소개팅 해서 두 번 본 아가씨의 어머니가 보자는데 어떻게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직 신혜씨와 두 번 밖에 안 만났어요. 둘이 좀더 시간을 갖고 가까워지면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만나 뵐게요. 지금은 조금 이른 것 같네요”
하지만 그 분도 집요하셨다. 어느 날 점심이나 같이 하자기에 아무생각도 없이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아뿔싸! 기어이... 그 분을 모시고 나오셨던 것이다.
2편에 계속......................................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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