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8)극성이 망친 맞선
아쉬움과 후회남는 만남, 지금도 잊을 수없어
“우수한씨 인사드려. 신혜씨 어머님이셔”
“예. 안녕하세요. 우수한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나 솔직히 오늘 우수한씨 보자고 한건 우리 딸이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부탁할 것도 있고 해 이렇게 김 국장한테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 했어요”
“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우수한씨만 좋다고 하면 올 가을이라도 결혼 시켰으면 하는데”
엥? 결혼... 그래 결혼이란다. 남자나이 30대 전후면 대부분이 한다는 그 결혼. 남들은 잘도 하는데 나만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결혼이란다. 참 화끈하신 분이다.
“네? 글쎄요... 전 아직 그렇게 까지...”
정신이 없었다. 이제 겨우 두 번 만났는데... 벌써 결혼 얘기가 오가다니.
“김 국장한테 우수한씨에 관해서 대충은 들었어요.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에 대한 얘기까지 들어서 어느 정도 수한씨에 대해서는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 더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식 올렸으면 좋겠어요. 신혜 아버지와도 상의했는데 얘 나이도 있고 하니까 올 가을에는 결혼 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에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무리 내가 결혼하고 싶어 환장한 놈이지만 이성을 찾아야 한다.
“일단 신혜씨가 어떻게 생각하는 가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남녀 관계라는 게 일단 당사자들이 좋아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둘이 서로 호감은 있는 것은 사실인데 아직 결혼 얘기가 오갈 정도로 진전된 것은 아니거든요. 이제 겨우 두 번 밖에 안 만났는데. 결혼 얘기는 조금 이른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정중하고 완곡하게 나는 내 마음을 말씀 드렸다.
“그래서 이렇게 우수한씨한테 내가 직접 부탁하려고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사실 우리 딸이 학교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바로 시작해서 그런지 얘가 숫기가 없어요. 그래서 우수한씨가 좀더 적극적으로 하면 우리 신혜도 우수한씨 많이 좋아할 텐데. 좀 적극적으로 해 줄 수 없어요?”
참 난감했다. 안 그래도 내 딴에는 적극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 중이거든요. 그리고 신혜씨 입장도 있으니 너무 혼자 매달리기도 그렇고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할께요.”
그러자 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김 국장님이 답답하셨는지 한수 거들고 나섰다.
“수한씨, 남자가 적극적으로 해야 여자를 사귀지. 이 친구 지금까지 여자를 못 사귄 이유가 있었구만. 정 안되겠다 싶으면 신혜씨 데리고 멀리 여행을 가버려. 그리고 차 고장 났다는 핑계 대고서 확실하게 사고를 쳐버리란 말이야. 나두 우리 집사람하고 술 먹고 술 취한 척하고 사고 쳐서 결혼 했어”
사고를 쳐? 솔직히 이게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이라 점잖게 표현했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더 노골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아니, 아무리 친하다고는 하지만 여자의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사고를 치라는 말씀을 하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어머니의 태도였다.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말씀에 동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내가 아줌마, 아저씨들한테 먹히는 스타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뜻밖이었다.
“우리 신혜가 수한씨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내가 나서지도 않아요. 어제는 신혜동생이 이런 얘기를 합디다. ‘누나 눈 높은 줄 알았더니 별론 가봐. 사람 되게 까다롭게 고를 줄 알았더니 선 한번 보고 말 모양이야’라고 까지 얘기 했어요. 얘가 너무 자기 표현력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수한씨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좀 수한씨가 적극적으로 해봐요”
솔직히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데 난들 왜 안 좋겠나. 하지만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노력해 볼게요. 그러니 너무 그렇게 다급하게 일을 진행 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자꾸 급하게 보채시면 저도 그렇고 신혜씨도 그렇고 서로 부담만 느낄 것 같네요. 그리고 오늘 신혜씨 만나기로 했거든요. 지금 나가야 시간에 맞출 것 같네요”
나는 약속을 핑계로 황급히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신이 몽롱했다. ‘사고를 치라고?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나. 하긴 내가 좀 아줌마들한테는 먹히는 스타일이지. 아가씨들도 아직 세상물정 몰라서 그렇지 인생을 더 살면 나 같은 놈 다 좋아할 텐데’그녀와의 약속장소로 차를 운전하며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은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차들이 많아 주차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여자친구 하나 사귀어 보는 게 소원인 놈인데 그깟 주차 문제로 걱정 하겠는가. 하여간 나는 병원주변을 서너번 돌고나서 병원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났을 까 그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커다란 눈, 누가 보더라도 눈을 쉽게 뗄 수 없는 그런 외모였다.
그런데 차문을 열고 내 차에 타는 그녀의 표정의 그전에 만났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어디 아프세요?”
헉... 이게 뭔 소린가?
“아니요. 좀 피곤해서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요. 다음에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래요 많이 피곤해 보이니 다음에 보는 걸로 하고 집으로 모셔 드릴게요.”
불과 몇 십분 전만 하더라도 나를 사위로 삼네, 사고를 치라는 둥 그녀의 어머니의 태도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그동안 나와 만났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리를 스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피곤함이 아닌 싸늘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년간의 소개팅 경험에 비춰볼 때 이거 이미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반 이상은 건넌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녀를 집 앞에 내려 주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저럴까? 내가 무슨 실수를 했을까? 지난번에 손잡은 것 때문인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런 태도로 나오는데 나보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보라는 것인지...
나는 조금 전 식사를 같이 했던 그녀를 소개시켜 줬던 김 국장님 가게로 향했다. 그분은 그녀의 집근처에서 분식집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저 답답한 내 신세 한탄과 그녀와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자 분식집을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에는 김국장님 내외분과 그녀의 어머니가 아직도 같이 이었다. 깜짝 놀랐다. 아니 나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무척 놀라신 모양이다.
“아니, 우리 신혜 만나러 간다더니 여기를 오면 어떡해요”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물 건너 간 것 같아요. 다년간 소개팅을 해본 제 경험에 비춰 볼 때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어머님’이런 간절한 마음이었지만 그녀가 나를 대했던 태도나 분위기를 사실 그대로 말 할 수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렇게 우리 둘이 잘되기를 희망하며 열변을 토했던 분들인데 이분들 앞에서 나는 결코 사실을 얘기 할 수 없었다.
“몸이 안 좋다고 해서 그냥 집까지 바래다 드리고 왔어요”
그러나 그분도 날카로웠다. 내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것을 보고 뭔가를 직감하셨는지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하셨다.
“너, 어디냐?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알았다. 엄마 곧 들어 갈테니 집에 있어”
그녀 어머니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 얘가 좀 아프다네. 많이 피곤한가 봐요. 나 집에 얼른 들어가 봐야겠네. 수한씨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됐네요.”
“아니요. 괜찮아요. 많이 안 좋은 것 같던데 잘해주세요”
나는 이 말을 마치고 그녀의 어머니와 분식집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 이후로 나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 단어만이 맴돌았다.
‘왜... 왜... 왜... 왜...’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것이 왜일까? 나는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이유도 모른 체 그녀를 놓쳐버리기엔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을 것 같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PC방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내 솔직한 심정을 그녀에게 전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제의 그 냉랭했던 태도가 돌아설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때 편지 내용은 뭐 이랬던 것 같다.
‘신혜씨를 만나고 내가 굉장히 밝아졌다. 비록 어제까지 3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화통화 등으로 꽤 정이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먼저 2번의 만남은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 같은데 어제 신혜씨가 보여준 모습은 나로서는 굉장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태도였다. 그동안 신혜씨도 나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느꼈는데 나 혼자의 착각 이었나? 내가 뭘 잘못했으면 지적해 달라. 고치겠다. 이 편지가 신혜씨와 마지막 편지가 될지 아니면 앞으로 신혜씨와 관계가 더욱 발전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편지가 될지는 신혜씨가 결정해 달라. 싫던 좋던 기다리지 않게 꼭 연락을 해 달라. 전화가 힘들면 문자로라도...’
편지를 출력하고 시간을 보니 9시도 안됐다. ‘너무 급한 마음에 서둘렀구나. 모처럼 쉬는 일요일이 아직 안 일어났겠지. 지금 가면 오히려 역효과 날 것 같은데’
PC방을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왜, 옛날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목욕재계를 하지 않는가. 나도 그런 심정(?)으로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나기전 나는 꽃가게를 찾았다. 편지만 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장미꽃 다발 하나에 얼마에요?”
“죄송한데요. 지금 주인이 교회를 가서 꽃다발은 못 만들어 들이는데. 그냥 여기 장미꽃 한 송이 포장된 걸로 사가세요”
맞다. 장미꽃다발...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내 마음이야 장미꽃 한 다발이 아니라 한 트럭을 갖다 주고 싶지만 받는 사람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와 한 손에는 내 마음을 전할 편지를 들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저 우수한입니다. 집 앞인데 잠깐 나오실 수 있으세요”
“피곤해서 그러는데 다음에 뵈면 안 될까요”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나의 각오도 비장했다.
“아니요. 지금 꼭 봐야겠습니다. 나올 때 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20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운동복차림으로 인상을 구기며 나왔다.
“그렇게 일방적인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올 때 까지 기다린다고 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면 어떡해요”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준비해간 장미꽃과 편지를 내밀었다.
“불쾌했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어제 신혜씨와 헤어지고 밤새 생각하고 이렇게 실천하는 겁니다. 편지 읽어보시고 꼭 답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내차로 향했다. ‘ 편지를 읽어보고 싫다고 할지 좋다고 할지. 연락은 하겠지. 싫더라도 문자는 보내달라고 했으니 어쨌든 답은 나오겠지’
그 후로 일요일에 아무 연락이 없었다. 월요일도 연락이 없었다. 화요일도 수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다 지쳐 수요일에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연락이 없어서 전화 드렸어요”
“네”
“편지는 읽어 보셨어요?”
“네”
“답을 주셔야죠? 제가 싫으세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말끝을 흐렸다. 싫은 건 아닌데 뭐가 있다는 얘기다.
“그럼 왜 절 자꾸 피하세요”
“사실 집에서 너무 부담을 줘서요.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빨리 결혼 시키려고 하시는데 너무 부담 돼서 수한씨 만나기가 꺼려져요”
“제가 부담 드린 적 없잖아요. 어른들이 뭐라고 하건 그냥 우리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요. 오빠동생으로 지내다가 나중에 발전해서 결혼할 수도 있는 거고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구요”
“네”
“그럼 이번 주 토요일 봅시다. 전처럼 그냥 어른들 얘기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만나요”
“네”
“연락할게요.”
역시 그랬다. 부모님들의 너무 적극적인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한 토요일 어떻게 됐을까? 약속시간은 오후 7시. 2시쯤 문자가 하나 왔다.
‘죄송해요’
문자를 받고 수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끝내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끝났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소식을 접했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과 사귄다는 것이다. 얘기인 즉 원래 병원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하나가 그녀를 점찍고 있었단다. 그녀 역시 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하지만 워낙 보는 눈이 많아 마음속으로만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웠단다. 그러다 그 중간에 내가 나타났고 병원에서 신혜씨가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소문이 나자 다급해진 그 남자가 고백을 했고 그녀는 그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 정말 복 받을 거다. 이렇게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다니니... ㅠㅠ
오늘의 소개팅 원칙 하나.
만남에 너무 부담을 주지마라. 이번 내 경우처럼 주변에서 너무 많은 부담을 줄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훨씬 크다. 연애 카운셀링 책들을 보면 주변인들을 공략하라는 전술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주변 공략이 너무 과하면 안 좋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부모님도 중요하고 형제들과 좋은 관계도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 간의 관계다. 당사자는 마음에도 없는데 주변에서는 ‘잘해봐라’라고 하면 정말 열 받는다.
남녀관계는 둘밖에 모른다고 했다. 일단은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후 그녀의 가족들을 공략해라. 그래도 늦지 않는다.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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