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독도와 내셔널리즘

  • 입력 2005년 3월 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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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로 한일관계에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올해가 국교수립 40주년을 맞아 양국이 공식 선포한 ‘한일 우정의 해’라는 사실이 무색하다.

이번 갈등은 일본 시마네(島根) 현 의회가 지난달 23일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제정 조례안을 상정하고 같은 날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대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발언한 데서 촉발됐다. 그러나 갈등의 본질은 한일 양국의 내셔널리즘이 충돌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독도는 한국 내셔널리즘의 상징이다. 일본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35년간 참혹한 고통을 겪은 한국으로선 다시 일본이 우리 땅의 일부를 넘보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독도의 경제적 가치를 떠나 민족적 자존심이 허용치 않는다.

하물며 현재의 한국은 100년 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의 피보호국이 됐던 대한제국이 아니지 않은가. 아직 경제대국은 아니어도 광복 후 숱한 고난을 꿋꿋이 이겨내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키운 것은 국가적인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내셔널리즘이다. 총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경제 수탈, 인권유린을 일삼았던 군국주의의 망령이 일본의 우파를 통해 점차 되살아나는 듯이 보인다.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우익 진영은 진실을 담아야 할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자위대(自衛隊)의 군사력이 군사강대국 수준에 이른 가운데 보수층을 중심으로 국가의 교전권 등을 금지한 평화헌법의 개정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여권이 최근 ‘애국심’ 고취에 초점을 맞춰 교육기본법을 개정하려는 것도 내셔널리즘의 일환일 것이다.

‘일본에만은 질 수 없다’는 한국의 민족주의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의 우경화는 상대국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배타적인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만 보면 한일관계는 순탄키 어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일관계의 악화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 다툴 때보다는 협력할 때 양국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훨씬 크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한일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 등 양국이 협력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국민들이 상대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엔 거부감이 덜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음식 등에 관한 일본 내 ‘한류(韓流)’ 열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또 국내에서도 렉서스 같은 일본 승용차를 타고, 일본 음식점을 드나든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친구가 되려면 그 자존심을 인정해줘야 한다. 한일 양국도 불필요하게 서로를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일본은 가당치 않은 독도영유권 주장이나 역사왜곡, 지도층 인사의 망언 등으로 한국의 대일감정을 악화시키는 일부터 중단해야 할 것이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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