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베커스 김영자]한국문화 알리는 번역물 아쉽다

  • 입력 2005년 3월 28일 18시 33분


1960년대 중반 독일로 유학 와 박사학위를 받고 20여 년간 독일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 왔다. 이국에서 모국에 대해 가르치면서 한국 관련 문화 저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현지인의 관심사를 충족시킬 한국에 관한 외국어 서적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독일의 경우 한국어 교과서 두세 권이 고작이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현지 출판사에서 굳이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들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매 학기 한국학 세미나 시간에 첫 두 강의는 한국역사개요를 가르친다. 한국의 시초를 소개하려면 단군신화와 삼국의 건국설화를 빼놓을 수 없어 삼국유사를 독일어로 번역해 학생들에게 소개해 왔다.

마침 2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박람회 운영위원회에서 2005년의 주빈국을 한국으로 선정하면서 이때가 삼국유사를 소개하는 적기라 생각하고 번역작업을 본격화했다. 번역을 하면서 왜곡되어 소개된 한국역사문화용어들도 이제 수정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유사에는 불국사 황룡사 등 사찰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근대 들어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 사찰을 일본 중국문화의 일부로 소개하면서 그리스 라틴어의 ‘신전’의 의미 그대로 영어로 ‘temple’이라 옮겼고 한국인 역시 누구나 이 용어를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고 있다. 불교계까지 덩달아 ‘템플스테이’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찰은 일반 신도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고대 신전이 아니라 수도와 선(禪)이 어우러지는 사원이나 수도원이 옳은 표현이다. 필자는 번역과정에서 고전철학을 전공한 공동역자를 설득해 독일어로 ‘Buddhistisches Kloster’(영어 ‘Buddhism Monastery’)로 바꿨다.

한국의 왕국 명칭 역시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비하된 ‘이씨 왕조(이조)’가 쓰이고 있다. 신라 고려도 분명히 신라왕국이요, 고려왕국이다. 따라서 ‘Dynasty’가 아니라 ‘Kingdom of Silla’, ‘Kingdom of Joseon’으로 표기해야 한다.

이렇게 왜곡된 용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필자에게 독일 학생들이 가끔 묻는다. “한국인이 펴낸 책에도 temple, dynasty라 쓰는데 왜 그렇게 열을 내세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나. 자네들이 좀 도와 주게”가 내 대답이다.

독도, 동해 표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백과사전에는 가야가 일본인이 정착한 문화지라고 지금도 쓰여 있다. 일본 교과서뿐 아니라 소위 서구 선진국의 교과서들도 대부분 일본 저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범세계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이 주빈국인 도서박람회는 해외에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한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많은 성과를 냈지만 한국학 도서 출판과 홍보는 너무나 미약했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 생긴 지 어언 10여 년. 한국 현대문학은 수백 권 번역됐지만 한국의 정서와 기본 문화를 모르는 현지인에게 생소한 음식만 잔뜩 차려놓는 것과 같다.

외국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저서 출판이 우선이다. 소수의 전문가보다는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한국의 얼굴을 보여 줘야 한다. 도서박람회를 통해 요리 불교문화 사찰 무속신앙 등 다양한 우리 문화가 일본과 중국 문화의 바탕에서 자란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릴 때다.

베커스 김영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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