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리사가 꿈이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공부보다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는 어른도 늘고 있다. 하지만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는 너무나 섭섭한 이유다. 미적분이나 공기의 저항에 대해 꼭 알 필요는 없으나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20여 년간 자주 깨닫곤 했다.
나의 꿈은 원래 요리사가 아니었다. 공고에서 기계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재미도 없고 월급도 너무 적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동생을 돌보는 상황에서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고심 끝에 친구들과 포장마차를 운영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깡패들의 협박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롯데호텔에 다니던 한 친구가 요리사의 길을 알려 주었다. 나는 지금도 이 일을 시작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경주호텔학교에 들어가 조리를 본격적으로 배웠고 마지막 동계실습 때 내 평생직장인 조선호텔로 오게 됐다.
프랑스 레스토랑인 ‘나인스게이트’에서 조리보조로 시작했다. 외국인 총주방장 8명이 거쳐 갔고 그들은 너무나 환상적인 요리를 선보이곤 했다. 나도 멋지게 해 내고 싶었다. 외국 요리책을 읽기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고 책도 열심히 사 보았다.
언제부턴가 해외 출장이 많아졌다. 일본 미국 싱가포르 태국…. 많을 때는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내기도 했다. 현지에서 내 임무는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보고 그 비결을 알아오는 것. 자갓 뉴요커 미슐랭가이드 등에 나온 곳, 현지인에게 맛있다고 소문난 곳은 다 가 봐야 했다. 부족한 시간에 많은 곳을 가야 하니 하루에 10끼를 먹은 날도 있다. 그때마다 그 맛을 기억하고 요리법을 탐구해야 했다. 호텔 방에 돌아오면 짐도 풀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먹고 메모하고 다시 머릿속으로 요리해 보는 일이 이어졌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맛을 느끼고 아는 만큼 요리할 수 있다. 열심히 요리를 탐구하다 보니 조리팀장을 거쳐서 지금은 식음총괄담당이 되었다. 내 꿈은 총주방장이었으나 총주방장을 넘어 식음과 조리를 총괄하게 됐으니 꿈을 초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조리복 대신 양복을 입고 레스토랑의 매출과 손익을 따지고 내부 계획과 운영 전략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이민 웨스틴조선호텔 식음총괄담당
▼약력▼
조리사로 시작해 국내 특1급 호텔 중 처음으로 ‘조리와 식음총괄담당(이사급)’이 됐다. 경주관광교육원 조리과,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웨스틴조선호텔 입사. 90년 전국조리기능대회 동메달, 95년 서울 국제요리대회 금메달, 96년 독일요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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